"문제와 조금 떨어지라"

(8. 21. 2016)

 

신앙생활을 할수록 영적인 눈이 열린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인생이 무엇인지, 인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인생이 잘되거나 망하는지 너무 잘 보인다는 말이다. 눈이 열리면 그렇게 된다.

 

문제는 그 때다.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 나의 친한 사람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가 보인다. 눈 먼 존재들이 보인다. 변화의 대상이다. 그래서 결심한다. "저들도 눈을 뜨게 해야지!" 변화를 위해 도전한다. 불완전한 관계, 가정, 회사, 사회와 맞서 싸웠는데, 풀리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나의 좋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시는가? 힘들다. 삶의 불행이 시작된다.

 

뜨겁게 공부하던 고3 시절, 방황하는 같은 학교 고1 후배를 품었다. 들어갈 집이 없는 학생이었다. 거의 1년을 좁은 방에서 데리고 살았다. 교회에서 배운 것이 많아서 잘해주며 변화시키려 들었다. 변화되었는가?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난 그가 교회에 같이 가지 않으면 화가 났다. 내가 베푼 호의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분노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 다니지 않는다. 절망에 빠졌다. ?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내 목표가 아니었다.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느새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결국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 때문에 내 고3 망했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은 이런 말이었다. "하나님 때문에 제 인생 망했어요!"

 

하나님의 뜻과 이 시대의 목소리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을 변화시켜봐!" 하나님도 물론 악을 싫어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세상의 변화가 너의 삶의 목표가 되라고 한 적 없다."

 

그럼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바울은 이렇게 명령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 성경은 세상의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변화된 "나의 삶"에 집중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태복음 5:13) 세상은 상관 없고 "네가 진짜 소금인지"를 묻는다. 세상을 규정짓기 전에 그리스도인을 먼저 규정한다. 내 행동으로 내가 직접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내 변화된 삶은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 세상의 변화는, 1)변화된 나의 삶을 통해, 2)하나님이 직접 행하신다.

 

풀리지 않고, 너무 답답한 문제로 삶의 무게가 무겁다면, 문제와 조금 떨어지라. 문제를 너무 끌어 안으려 하지 말고 소금처럼 반응하라. 나의 변화된 삶으로 그 사람을, 그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 나의 변화된 삶은 주님께만 드려라.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 세상이 변화되지 않아도 주를 신뢰해야 한다.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아도 끝까지 주와 동행하며 소망을 견지해야 한다. 나를 구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께서, 그 사람도 구원하실 것이다. 나도 예수님이 구원하셨다. 그 사람도 예수님이 구원해주실 것이다.

 

[1-3]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던 주변 사람이나 상황이 있었습니까? 혹시 변화를 시도해본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답답했습니까? 쉽게 되던가요?

 

[4-5] 마태복음 5 13-16을 함께 읽어봅시다. 성경은 변화를 어디서 찾나요? 직접적인 개입입니까, 아니면 간접적인 반사(reflection)입니까? 빛과 소금은 어떻게 작용합니까? 내가 변화에 대해서 잘못 접근하고 있는 태도들을 살펴봅시다.

 

[6] 문제가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려, 내 삶을 무너뜨리는 부분을 살펴봅시다. 너무 중요한 문제이다 보니 내가 구원하려는 나의 사람, 나의 가정, 나의 영역이 있습니까? 다시 예수님께 구원을 부르짖어야 할 부분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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