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들었던 것"
(7. 9. 2017.)
요한이서 4-6절
한 청년이 부유한 집에 살았다. 그럼에도 삶에 지겨움이 있었다. 가출했다. 주변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를 몰랐다. 한 친척이 찾아 가서 청년에게 왜 가출했냐고 물었다. "그냥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 없이 실증이 났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곳에 다녔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월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주말에 옷을 갈아입고 영화를 보고 그랬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돈을 모아서 라디오를 샀을 것이다. 라디오는 그 당시 귀한 물건이었다. 이 청년은 집을 나가지 않았어도 이 라디오를 살 수 있었다. 나가서 하는 일이 똑같다는 것이다. 모래의 여자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겨움 때문에 강박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할 때가 있다. 하지만 새로움 속에 또 다른 지겨움을 발견한다. 연예인 이효리는 다양한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순간의 삶의 허무함을 극복하며 살았다. 마흔이 넘은 후 삶의 진리를 이렇게 고백한다. "그놈이 그놈이다." 결혼을 한 사람도,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사람도, 그것을 깨달아야 파랑새를 찾으려는 마음을 그치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파랑새는, 늘 내 손 안에 있다.
사도 요한이 주변 교회에 편지를 쓴다. 이전에 썼던 글도 있으니, 새로운 글에는 새로운 내용이 담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말이 독특하다.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5절) 새로운 계명, 새로운 통찰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너희가 알고 있고, 이미 가지고 있던 내용, 바로 그것을 너에게 강조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서로 사랑하자"(5절)
인생에 지겨움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신 본질을 회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랑이 어려우니 사람을 피한다. 안 맞는 사람을 골라낸다. 내가 원하는 대로, 라디오를 사기 위해서 삶을 살아간다. 지겹다. 왜? 내 인생의 본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가진 것", "처음부터 들었던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내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가? 예수가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의 사명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대로, 내게 주신 이웃을 사랑해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치열함과 눈물, 인내와 분노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떠나 새로움을 찾지 말라. 그것은 삶의 본질이 아니다. 새로움을 찾아 헤매는 내 삶의 모습이 있다면, 다시 돌아오자.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바뀌어도 본질을 떠나진 말자. 그리고, "서로 사랑하자." 원래 알던 것에 집중하자.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1-2] 새로움을 찾아 방황하던 인생의 시절이 있었습니까?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습니까? 그리고 얻은 내 삶의 진리는 무엇입니까? 새로움 속에 또 다른 지겨움과 반복을 나누어봅시다.
[3-4] 요한이서 4-6절을 읽어봅시다. 새로운 편지를 쓰고 있는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새로움에 대한 요한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5] 내 삶의 많은 새로움과 변화 속에서도 놓치지 않아야 할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지겹지 않게, 풍성하게, 생생하게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만의 신앙의 노하우를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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