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는 상계한다. 관계는 상계하지 않는다.”
(7. 16. 2017.)
데살로니가전서 5:10
서로 다른 두 거래를 “퉁치는 것”을 상계(相計)라고 한다. 내가 밥 사고, 친구가 영화를 보여주면 거래가 서로 상계된 것이다. 거래는 상계가 가능하다. 상대방에게 거래 이상으로 관계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관계는 다르다. 관계는 거래가 아니다. 상계되지 않는다. 관계 속에 나타나는 행동은 거래가 아니다. 관계에 대한 나의 태도를 ‘표현’할 뿐이다. 내가 밥을 샀지만, 내일 영화도 보여줄 수 있다. 상대방에게 상계할 것이 없어도 좋다. 관계는 상계를 바라지 않는다.
상계하듯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 QT를 했으니, 엄마에게 내는 화는 용서된다. 선교를 다녀 왔으니, 놀아도 비교적 마음이 편하다. 지난주 교회에 빠졌지만, 이번주에는 팀모임도 하고 가니까 괜찮다. 지금 이 사람은 거래를 하고 있다. 사랑한다고 말했으니, 미워한다고 한 번 말해도 괜찮지 않냐는 식이다. 관계에는 모든 행동의 일관성이 있다. 그것이 없으면 모두 거래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 그의 죽으심은 거래가 아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나 깨나 그와 동행하게 하심이 목적이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면, 내 행동의 일관성을 점검해야 한다. 내 행동을 서로 상계하지 말라. 관계는 상계가 불가하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은 상계하는 인생을 사셨다. 무엇을 상계 하셨는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순종을 통해, 내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죄악을 모두 상계하셨다. 그분은 나의 죄를 상계하시기 위해 “일관적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그 분 앞에 무슨 거래를 들이밀지 말자. 내가 거래하기 전에, 이미 그분은 내 죄를 모두 상계하신 나의 하나님임을 받아들이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상계하고 싶을 때마다 그의 일관된 나를 향한 사랑을 생각하자. 나의 삶에 상계는 그치고, 일관적인 순종의 기적이 시작될 것이다.
[1-3] 거래와 관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 이익을 취하면서 이것저것 상계해나가려는 나의 태도들을 나누어봅시다.
[4]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을 읽어봅시다. 그의 죽으심은 나의 무엇을 위함입니까? 이 구절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거래로 바라봅니까, 상계로 바라봅니까?
[5] 예수님은 상계하는 삶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나의 무엇을 모두 상계하셨습니까? 나는 이제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 삶의 일관성을 찾아가야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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