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질투를 신뢰하라”
(6. 3. 2018.)
출애굽기 34:14
하나님은 질투하신다. 질투는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성품이다. 질투는 나의 것이 잘됨을 즐거워 함과 동시에,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을 증오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잘 되는 것을 증오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아닌가? 질투라니 수준 낮은 성품 아닌가? 나를 대적하거나 힘든 상황을 하나님께 말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신다고 하자. “뭘 그렇게 힘들어하니? 그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난 그 사람도 잘 되기를 바래. 너무 뭐라고 하지마.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단다.” 위로가 되는가? 질투 없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적하는 자에 대한 분노와 질투가 필수적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나의 대적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사랑을 느낀다. 하나님은 당신의 대적을 질투하신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출애굽기 34:14) 내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상황에서 대적하는 자를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공포가 되기도 한다. 내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하나님은 나의 삶, 나의 생각도 질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분명히 대적하실 것인데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거절할 때 느끼신 질투를 나에게 쏟지 않으셨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노를 쏟으시고, 나를 향한 질투를 거두셨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해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대적이 아무리 나보다 훌륭해도, 나를 대적하는 자를 질투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때, 이제 난 알 수 있다. 아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분이, 지금 나의 상황에서도 결국은 ‘내가 유익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지키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대적이 다가올 때마다, 평생 나의 대적을 질투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아들까지도 버려 당신을 죽음에서 지키신 그분이, 당신을 그 상황에서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1-2] 질투와 사랑은 별개가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의지하면 그 한계가 무엇입니까? 나의 가족, 나의 편, 내가 친한 사람을 못살게 굴어서 질투가 났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3-4] 출애굽기 34:14를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그 반응을 나에게 쏟으시는 대신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5-6] 삶의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분은 어느 정도로 나의 삶의 유익을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질투를 신뢰하고 대적과 싸우며 전진해야 할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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