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7. 21. 2019.)
창세기 50:18-21
나쁜 일에는 대부분 원인이 있다. 아무리 봐주고 싶어도 사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다. 그 일만 없었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은 탓을 하는 것이다. 탓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억울함이 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평하지 말라, 탓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악한 원인이 실존하는데, 탓하지 않고 해결할 방도가 없는데 어떻게 하는가? 사람에겐 탓을 못하게 막는 억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탓을 안 해도 되는 구원이 필요하다.
요셉이 형제들의 방해로 이집트에 팔려간다. 모든 인생 계획이 통째로 뒤바뀐다. 십수 년 간의 감옥 인생을 누구에게 보상받겠는가? 그런데 악과 실수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믿음이 그의 해석을 뒤바꾼다.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다시 만난다. 그의 반응은? 탓이 아니었다. 그는 ‘탓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선포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다시 해석하면 이런 말이다. “당신들을 탓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 나쁜 일을 통해서 더 좋은 일을 행하셨거든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의 자유란 이것이다. 탓하지 않고 참는 것이 아니라, 탓할 필요가 없는 자유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이 재해석된다.
예수님은 ‘탓하는’ 세계관을 모조리 끌고 십자가로 가셨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이 예수님 때문이라고 욕했다. 자기들의 잘못이었음에도, 예수님은 그 탓을 모조리 품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이제 남 탓 할 필요 없다. 내가 다 안고 갈 필요도 없다. 인생의 탓해야 할 문제는 모두 예수님께 가져가라. 탓의 세계관을 구원의 세계관으로 이미 바꾸신 분이 계시다.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다. 탓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분명히 선으로 바꾸실 것이다. 악한 일, 탓할 일, 나쁜 일 속에 계속 전진하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 안에서, 하나님은 내 삶의 일을 분명히 선으로 바꾸실 것이다.
[1-2] 자꾸 그 사람 탓, 그 사회 탓을 하게 되는 내 삶의 고질적인 부분이 있습니까? 혹은 내 삶에 대해 자책할 때가 있습니까? 확실한 원인, 확실한 책임이 있는 사람 앞에서 분노와 억울함을 참기 어려웠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3-4] 창세기 50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요셉의 생애는 형제들의 한 번의 악행으로 어떻게 뒤바뀌었습니까?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5-6] 죄 없으신 예수님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 탓을 했습니까? 탓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예수님은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내가 탓하지 않고, 하나님이 선을 이루심을 믿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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