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결과는 씨앗”
(3. 21. 2021.)
골로새서 1:24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나의 죄 때문에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셨다. 여기서 질문이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셨는데, 내가 이 땅에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 펼쳐진 결과는 왜 그대로인가? 나쁜 짓을 하면 대가를 치르고, 악을 행하면 불행해진다. 내가 잘못한 일이니, 남은 내 인생엔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 아닐까?
바울이 사람 죽이고, 박해하고, 교만하게 살았다. 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었지만, 사람들이 바울을 싫어하고, 많은 괴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내가 예전에 지은 죄가 많아서, 나를 사랑하시긴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벌 주시나봐”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내가 받는 고난을 다르게 해석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 1:24) 내가 받는 괴로움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는 고난으로 해석한다.
지난날의 죄악에 눌려있는가? 앞으로의 인생이 죄의 결과를 뒷처리 할 뿐인 것 같아서 후회되는가?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라. 예수님이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면, 내 삶의 모든 죄의 결과는 씨앗이 된다. 죄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과 주변 삶의 회복과 완성을 위한 거룩한 고난이 된다.
죄의 결과는 무조건 씨앗이다. 예수님이 말도 안되는 재판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사람들의 죄악이 십자가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승리의 씨앗이 되었다. “통치자와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2:15) 죄의 결과는 십자가였고, 십자가는 나의 구원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의 삶도 확신하라. 예전에 지은 죄, 지난 주에 지은 죄, 어제 지은 죄, 지금 방금 지은 죄, 앞으로 지을 죄도 주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를 맞이할 때마다 소망으로 반응하라. 괴로운 결과이지만, 그 결과를 주님은 역전과 회복의 씨앗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 능력이다.
[1]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셨음을 믿습니까? 그것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내 삶에는 지난날의 잘못된 선택이나 죄악의 결과가 그대로 펼쳐질 때가 있습니다. 죄의 결과라고 보이는 내 삶의 요소들을 나누어봅시다. (방황, 가난, 게으름, 중독 등)
[2-3] 골로새서 1장 24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삶에 고난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그 고난을 자신의 죄와 연결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과 연결시키고 있습니까?
[4-5] 골로새서 2장 1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의 삶에 죄의 결과로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내 삶에 어떤 씨앗이 되었습니까? 내 삶에서 죄의 결과로 해석 하던 것을, 승리의 씨앗으로 다시 바라봐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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