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마지막 가능성”
(4. 16. 2023.)
시편 119:67
사람 잘 안 바뀐다. 중2때 성격이 죽을 때까지 간다. 성격은 사실 자기고집이다. 성격이 변한다는 것은 자기고집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 인생 주인이 나인데 왜 남의 말 듣고 내가 바뀌어야 하나? 특별한 계기 없이 사람 바뀌기 쉽지 않다.
하나님이 사람 바꾸시는 방법이 있다.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 119:67) 세상은 고난을 불행이라고 여긴다. 신자의 고난은 불행이 아니다. 변화를 위해 정교하게 고안된 하나님의 계획이다. 오늘 내 삶에 고난이 있는가? 이제 무조건 다르게 해석하라. 그 고난은 나의 불행이 아니라 나의 변화를 위한 선한 일이다.
솔직히 인정해보자.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나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 고집을 내가 더 잘알지 않나? 신앙의 감격도, 은혜도 그저 그럴 것이고, 행위도 절대 안 변할 것이다. 게으름, 험한 말투, 남을 무시하는 교만, 분위기 파악 못하는 무지함… 언제 변하나? 고난이 오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구원의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는 ‘성화’와 ‘영화’가 있음을 기억하라.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라면, 하나님은 내가 변화되지 않을 때 분명 고난을 계획하고 계실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 자녀,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고난이 변화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고난은 결코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정말로 불행한 고난은 나 대신 예수님이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누가복음 24:26) 그의 고난은 나에게 영생과 부활을 보장해주었다. 나머지 내가 당하는 고난은 이제 예수님 안에서 겪는 고난이다. 이 고난은 내게 저주가 아니라, 무조건 선한 변화와 소망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현재 겪는 고난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변화되려고 하라. 언제 극복되나 기다리지 말고, 무엇을 변화시키고 계신지 관찰해 보라. 하나님의 초점은 거기에 있다. 내 마지막 변화의 가능성을 붙들라. 고난 당한 사람만 신자가 된다.
[1] 내 자신, 혹은 주변 사람의 삶이 정말 고집스럽게 변화되지 않는다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3] 시편 119편 67절을 읽어봅시다. 한 사람의 ‘전’과 ‘후’가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중심에 있습니까? 전과 후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성경은 고난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4-5] 예수님이 나를 위해 대신 당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님 안에서 현재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 나는 어떻게 변화되고 있습니까? 최근 어떤 변화를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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