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자기 의”
(11. 3. 2024.)
로마서 2:1
관계도 실력이다.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가 옆에 있던 친구를 때렸다. 맞은 친구 엄마는 너무 화나서 때린 아이를 째려보며 속으로 그 아이 엄마를 욕했다. 함께 있던 지혜로운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친해지고 싶구나? 그럴 땐 때리지 말고 먼저 인사하면 되는 거야” 못 배운 아이에겐 때리는 것이 친밀함의 표시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성격과 매너도 자기 의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신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로마서 2:1)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런데 함부로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가장 화가 난다. 화 안 낸다며? 이것이 자기 의다. 나는 매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만 보면 가장 욕이 나온다. 내가 가장 잘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을 정죄하는 도구가 된다.
성품의 우월함을 가지고 상대를 정죄하지 말라. 상대가 돈이 없다고 무시하고, 못 배웠다고 무시하는 것과 똑같은 죄이다. 입이 좀 거친 사람들을 부드럽게 품어내야 한다. 무조건 편가르려는 사람에게 끝까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배려하지 못하고, 무질서하거나 산만한 사람들을 끝까지 질서 있게 기다려줘야 한다. 내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성품이 상대를 무시하지 않게 하라.
예수님은 성품의 완성이셨다. 우리를 성품으로 비난하지 않으셨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베드로전서 2:23) 맞대어 나에게 욕하지 않으신 예수님 때문에 내가 구원을 얻었다. 오늘 내가 나의 부족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믿는가? 신자로서 나도 그렇게 행해야 한다. 내 성품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은혜로 배우게 하신 것이다. 나도 거저 받은 것인데, 그것으로 남을 정죄할 수 없다.
내가 좀 더 매너 있고 고상하고 잘 안다고 우월한 척 좀 하지 마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신앙의 핵심이다. 매너의 자기 의를 벗어나라. 그게 진짜 하나님 나라의 매너다.
[1] 관계도 배워야 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학창시절, 직장에서, 부모로부터, 매너와 관련된 실수, 깨달음, 에피소드 등을 나누어 봅시다.
[2-3] 로마서 2장 1절을 읽어봅시다. 사람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은 무엇입니까? 그 죄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그것이 상대를 정죄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베드로전서 2장 23절을 읽어봅시다. 욕하는 자 앞에서 예수님이 대응하신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사랑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로 얻은 구원 앞에서, 나도 신자로서 성품의 우월함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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