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네러티브(narrative)가 진짜다"

(10. 9. 2016)

 

베드로전서 1:10-12

 

인생은 설명이 안 될 때 답답하다. 이유가 있고, 의미를 알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해석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 왜 이 장소, 왜 하필 이 사람, 왜 하필 이 시간인가? 삶의 질문은 모두 여기서 나온다.

 

삶에는 "표면적 네러티브"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삶의 흐름을 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삶에 "숨겨진 네러티브"를 동시에 진행시키신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흐름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보이는 것이 전부, 물질적인 현상이 전부라고 말하는 유물론을 철저히 배격한다. "삶에는 보이지 않는 스토리가 있다." 이것이 숨겨진 네러티브이다.

 

한 여자 대학생이 남자 동기에게 남자친구를 소개받게 되었다. 남자친구와 그 남자 동기는 서로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어떻게 같은 기숙사가 되었나? 우연히 기숙사 방을 배정할 때, "혹시 방 같이 쓰실래요?"라고 물었다. 서로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그 한마디에 같은 방을 쓰는 사이가 된 것이다. "방을 구하는 장면"으로 인생을 보면 표면적 네러티브이다. 그러나 "한 여자의 남자가 연결되는 과정"으로 보면 숨겨진 네러티브이다. 표면적으로 삶의 결과만을 살펴보던 그 여자는, 자신이 남자친구를 소개받게 된 경로를 살펴보며 숨겨진 네러티브를 깨닫기 시작했다.

 

옛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을 받았다. 그것이 도대체 언제인지, 어느 시간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연구했다. 선지자들은 자신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연구해보니 숨겨진 네러티브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주신 구원이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10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 12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베드로전서 1:10-12) 선지자들은 표면적인 네러티브를 연구했는데, 숨겨진 네러티브를 발견했다. 하나님의 스토리는 선지자를 뛰어넘어 온 인류의 구원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의 압제라는 표면적 네러티브 속에서, 숨겨진 네러티브를 통해 나에게 오셨다. 나의 삶이 그 방법으로 구원 받았다면, 앞으로의 삶도 숨겨진 네러티브를 통해 인도함 받을 것을 믿으라. 보이지 않는 네러티브를 발견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라. 표면적인 답답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인생의 재미는 여기에 있다.

 

[1] 요즘 나의 삶에 가장 이해 되지 않는 사람, 영역, 상황은 무엇인가요? 그 사람을, 그 상황을 어쩌다가 만나게 되었나요?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2-3] 표면적인 네러티브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네러티브가 전개되며 삶에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경험이 있나요? 어떤 만남,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이었나요?

 

[4-5]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구원으로 오신 상황은 표면적으로 어떠하였나요? 로마 사람들은 그것을 알았을까요? 그 분의 방법을 믿기에, 나의 삶에 로마제국과 같은 압제 속에서도 숨겨진 네러티브를 통한 구원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하는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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