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은 행동양식이다"
(9. 18. 2016)
어디로 부름 받았는가? 신앙인들에게 중요 관심 주제이다. 참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나 열악함 속에 있는 신앙인도 있다. 그러다가 환경이 바뀌기도 한다. 어디가 부르심인지 헷갈린다.
부르심을 장소로 착각해서 그렇다. 부르심을 사회적 지위로 착각해서 그렇다. 부르심은 그런 것이 아니다. "부르심은 행동양식이다." 하나님은 내 삶의 환경을 시기에 따라 알맞게 인도하신다. 환경은 가변적이다. 그러나 그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부르심이 있는 자는 부르신 자의 뜻대로 행한다. 하나님이 나의 공급이 되시며, 내가 의지할 분임을 고백하고, 어떤 환경이든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부름 받은 삶이다.
크리스천이 부자라면 악한 것인가? 돈을 다 포기하고 가난한 곳으로 가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크리스천이 부자라면, 일부러 가난해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부름 받은 삶이라면, 그 형편에서의 행동양식이 중요하다. 그를 만나는 다른 부자들은 그의 삶을 볼 것이다. 그의 삶이 그리스도를 따르는지, 결정 기준이 무엇인지, 무엇을 자랑하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 볼 것이다.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현재 부자라면, 돈으로 당신의 부르심을 증명하라. 하나님이 돈을 주셨는가, 아니면 돈의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살아가는가? 행동양식을 점검하라.
크리스천이 가난하다면 잘못 산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부자가 되는 것을 삶이 목표로 삼아선 안 된다. 가난 속에도 부르심이 있다. 가난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다. 다른 가난한자들은 그의 가난한 삶을 볼 것이다. 그의 삶이 소망이 있는지, 가난함 속에도 어디서 기쁨을 찾는지 볼 것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감정과 의지도 같이 무너지고 있는가? 당신도 부르심을 따르지 않는 삶이다. 행동양식을 점검하라. 환경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울이 고백한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2) 그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이 구절은, 내게 능력을 주셔서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말이 아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면 재물을 더 모을 수 있다는 다짐도 아니다. "그분이 내게 능력을 주시기에, 그분을 기뻐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행동양식으로 모든 환경을 살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기도제목을 점검하라. 환경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면, 부르심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단 한번도 환경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다. 환경은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이미 부르셨다. 부르심을 알았다면, 장소, 재산의 수준, 사회적 지위가 변화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원하시는 행동, 그분이 원하시는 감정, 그분이 원하시는 관계 맺는 방식을 고민하라. 그것이 부르심이다. 부르심은 행동양식이다.
[1] 요즘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부르고 계시다고 느끼나요? 특별히 부르심을 느꼈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2-4] 부자는 잘못된 것입니까? 가난하면 잘못된 것입니까? 환경이 바뀌면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난 그곳에서 어떤 부르심에 맞는 행동양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5-6] 환경의 변화에 집중하다가 부르심을 잃어버리고 나의 이익과 나의 만족만 생각하는 삶의 습관들을 돌아봅시다. 내가 속한 환경에서 나는 어떤 행동양식을 변화시켜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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