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칼럼28 “자기학대의 탈출구
(2. 11. 2015)

 

남자는 서로 무너지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친밀감을 느낀다. 내면이 통하기 시작한다. 친구의 폰을 빌렸는데 야한 동영상이 발견 됐을 때 깔깔거리며 웃는다. “너도 나처럼 약하구나!” 이것이 위로로 다가온다. 어제 밤새 독서했다는 친구보다는 너무 우울해서 술 마셨다는 친구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너도 나처럼 외롭구나!” 그 친구만큼은 내 안의 우울함을 이해할 것이라 느껴진다.

 

남자는 모두 마음 속에 다른 마음이 있다.” 사실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 사실은 약하다는 것, 사실은 악하다는 것을 자기도 안다. 자존심 때문에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뉴스에 들킨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의 반응을 보니, 악성 댓글을 달면서 죽으라고 소리친다. 나도 들켰다간 죽겠다 싶다. 그래서 참는다. 숨기기 시작하니까 진심을 나누기 어렵다. 내 주변 사람 모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진심을 말하는 것 같진 않다. 그렇게 남자는 거짓에 둘러쌓여 질식한다.

 

마조히즘을 아는가? 누군가 나를 학대할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아픈데, 당하는데 왜 쾌감을 느끼는가? 내 안의 연약함을 숨기며 살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너는 맞아야 한다, 너는 벌 받아야 한다, 너는 당해야 한다며" 다가온다. 사실은 그 말이 내 삶에 더 어울리는 말임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나에 대한 진실을 남한테 들은 것이다. 때리는 사람만이 나의 깊은 내면의 못생긴 모습을 이해한다고 느낀다. 그 때 역설적이게도 친밀함과 진실함을 느낀다. 쾌감을 느낀다마조히즘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우울증은 내 스스로 나를 학대하는 마조히즘의 다른 말일 뿐이다. 내 안의 못생긴 모습에 집착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자학적인 행동이 마조히즘이다마조히즘의 중독은 아주 강력하다거짓이 아닌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자 안의 못생김을 이미 잘 아시는 한 분이 계시다. 그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내 못생긴 면을 남에게 들키기 전부터 이미 나의 모습을 아셨다. 이전엔 고통 당하고, 학대 당하고, 우울증으로 스스로를 학대해야 나에 대한 진실이 통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고통 당하지 않아도 진실이 통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고통 당하셨기 때문이다난 정말 맞아야 싼 놈인 것을 남자는 모두 잘 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적당히 때려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에게 적당한 고난을 당하게 한다면, 우린 그가 내 죄를 대신 해결했다고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남자의 죄 값을 해결하려면, 살살 때려서는 절대 안 된다. 남자는 예수님을, “죽여야한다.”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을 세게 때릴수록, 우린 시원해진다. 진실을 만난다. 그것이 예수님의 죄사함이다.

 

이제 마조히즘에서 벗어나도 된다. 더 이상 학대 당하며, 스스로를 학대하며 편안함을 느끼는 늪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마조히즘과 기독교 모두 진실함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쾌락이 있다. 그러나 남자는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마조히즘엔 없는 것이 예수 안에는 있다는 것을. 내가 만난 사디스트에겐 사랑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예수님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라. 그 쾌감은, 곧 눈물로 바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자기학대의 쾌감을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가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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