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칼럼11 “잘 쪼개는 남자”
(10. 15. 2014)
국가마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남자의 모습이 있다. 옛날엔 가부장적 남자가 멋있었다. 가정 밖의 큰 목표를 이루는 남자가 멋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한 남자의 포부를 들어보라. “The best father in the world!” 무슨말인가? 가정과 아이에만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의 모습이 성경적인가? 가부장적인 것도 아니고, 가정만 신경쓰는 것도 아니다. 왜? 살아보라. 현실적으로 남자는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이 지켜왔던 스타일, 고집, 자부심을 내세워서는 결코 삶이 세워지지 못한다. 그 스타일을 유지하다가 다른 모든 삶이 무너진다. 기억하라. 남자는 필요에 따라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잘 쪼개는 남자”의 특징이다.
쪼갠다는 것이 무엇인가? 애덤스미스의 책 “국부론”은 경제학의 뿌리가 되는 중요한 책이다. 중요도 만큼 두껍기도 하다. 그 많은 하고 싶은 말 중에 첫 테마가 무엇인 줄 아는가? “분업”이다. 분업의 핵심이 무엇인가? “쪼개서 일하면 전체가 커진다”는 것이다. 더 큰 남자가 되고 싶은가? 내 자신의 역할을 쪼개라. 나 자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쪼개라. 그러면 전체적으로 더 큰 가정, 더 큰 역할, 더 큰 사명을 이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사명을 감당하셨다. 십자가를 앞두고 철야 기도회, 산상 제자 팀모임, 가버나움 신유집회 같은 중요한 사역이 많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겉으로 중요해 보이는 이런 일에만 집착하지 않으셨다. 한가지 스타일에만 집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자신의 모습을 여러가지로 쪼개셨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한 후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부활한 몸을 보여주느라 바쁜데 저런 애들 챙기는게 중요한 게 아니야. 핵심에 집중하자. 베드로는 버리자!”라고 다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쪼개셨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요한복음 21:9) 예수님은 부활 직후 그 중요한 시점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쪼개어 파티 플래너가 되셨다. 스스로 혼자 다 세팅하셨다. 숯불을 구하셨다. 불도 붙이셨다. 생선도 따로 사오셨다. 떡도 준비하셨다. 예수님의 자아 분열 증세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스타일을 쪼개셨다. 하나의 예수님, 하나의 마음이었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 그 마음을 담아내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매력이다.
자아 분열을 체험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님의 자녀로서 나의 자아는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 내가 유지하고 싶은 나의 이미지에 너무 갇히지 말라. 남자가 커지려면 내 자신을 쪼갤 줄 알아야 한다. “난 그런 건 안 하는 사람이야” 이것 만큼 큰 교만이 없다. 한 번 쯤은 같이 설거지 해주라. 한 번 쯤은 안 웃겨도 웃어주라. 동행해주라. 눈 맞춰주라. 한 번 쯤은 같이 스타일 구겨주라. 잘 쪼개는 남자가 되라.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남자의 자유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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