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질서(The Order of Love)"
(8. 27. 2017.)

마가복음 12:29-31

 

성경은 인간을 "무언가를 사랑하는 존재"로 본다.(You are what you love.)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따라간다. 그것을 향해 끌린다. 그것을 향해 자신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쏟아 붓는다. 이성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감정을 다스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 흔들리는 것은 내가 기대하고 사랑했던 대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모든 오감을 다스린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가복음 12:30) 의문이 든다.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기독교인은 돈을 벌면 안 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성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죄인가?

 

이것은 착각이다. 성경은 인간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존재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에 "질서"가 있음을 지적한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The Order of Love"(사랑의 질서)라고 표현했다. 사랑에는 질서가 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내 삶에 내가 사랑하는 다른 것들도 올바른 자리를 찾을 수 있다.

 

하나님보다 내 연인을 제일 사랑하면 안 되는가? 연인이 하나님이 되면, 사람은 (1)상대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거나, (2)상대가 기대 이하일 때 분노하고 절망한다. 연인의 약점은 곧 내 삶에 위협이 된다. ? 내 연인은 약점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점점 상대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기대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며 불안해진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안하냐고 탓하지 말라. 내가 불안한 것을 제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외모를 가장 사랑해보라. 나는 이 외모로 내 인생이 멋지고, 예쁘다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외모가 하나님인 사람은 (1)돈과 시간을 외모에 과도하게 써서 다른 삶의 영역을 망치거나, (2)외모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한다. 내 외모 때문에 인생이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 이미 무너질 것을 제일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바뀌기 전에 삶에 평안을 찾을 수 없다. 내가 불안한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불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질서를 회복하라. 예수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셨다. 목숨을 걸고 내 삶을 구원하셨다.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할 때 내 사랑의 질서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난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 사랑들은 누릴 뿐이다. 그럴 때 진정으로 연인을 사랑하고, 돈을 사용하며, 외모를 가꿀 수 있다. 돈과 외모, 연인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삶의 균형이 깨졌다고 느낄 때마다, 사랑의 질서를 점검하라. 돈을 못 벌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사랑의 질서가 파괴된 것이다. 외모가 못생겨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질서가 뒤틀린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사랑을 나중에 배치시키라. 그 사랑이 충만할수록, 다른 불안을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질서가 있는 가을이 되기를 기대한다.

 

[1] 나는 요즘 어디에 끌립니까? 예전엔 어디에 끌렸습니까? 우린 모두 무언가를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2-6] 사랑에 질서가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면,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그것을 섬기게 됩니다. 나만의 하나님을 세우고, 나의 하나님에게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과도하게 절망했던 경험들을 나누어봅시다.

 

[7] 나를 향한 가장 큰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 사랑을 묵상하며 사랑의 질서들을 바로잡아야 할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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