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백하는 복음"

(7. 24. 2016)

 

모든 것을 알겠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 예배 때마다 이해되지 않는 말이 없다. 그래도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복음을 삶 속에서 체험한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선지자라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통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 뱃속에 갇혔다. 뱃속에 갇히자 이렇게 고백한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Salvation comes from the LORD, 요나 2:9) 이상하다. 요나가 이 말을 몰랐을까? 구원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알았다. 이미 외우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물고기 배 속에서 깨달았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살아있는 체험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진짜 살아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그제서야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예수님도 몸으로 말씀을 살아내셨다. 부활을 위해 죽음을 통과하셨다. 강함을 위해 약함을 통과하셨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나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몸으로 드러내셨고, 몸으로 체험하셨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면, 삶의 어느 부분에선가 죽음을 통과하고, 약함을 통과하게 하실 때가 있을 것이다. 이유는 한가지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이 말이 진짜임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약함 속에 강함을 경험한다. 그래야 죽음 속에 부활을 경험한다.

 

말씀과 삶의 충돌이 있다. 정말 우스워 보이는 하나님 말씀이 있다. 답답하고, 입에선 욕이 나오며, 아무리 걸어가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말씀을 붙들고 그대로 해보라. 분투하며 버텨보라 나의 언어, 눈빛, 행동, 태도, 습관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되는 부분에 집중해보라.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그걸 체험해야 한다.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선배는 가까이 하지 말라. 삶의 약함 속에 말씀을 붙들고, 분투하고 승리하는 체험을 말하는 선배를 가까이 하라.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는가? 당신이 그 선배가 되라. 당신의 고백이,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당신이 어느 날, 뻔히 아는 그 말씀을 다시 고백하는 그 날을 기대한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1] 삶의 바쁨과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할 겨를 없이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나의 삶의 영역은 1)어느 장소, 2)어느 순간, 3)어느 사람을 만날 때 입니까?

 

[2-3] 왜 요나는 뻔히 아는 말을 다시 고백했습니까? 다시 고백할 수 있었던 상황적 배경은 어떠했습니까? 요나 1:17~2:10 을 읽어봅시다. 나의 삶에 '다시 고백하는 복음'이 있었던 체험을 나누어봅시다.

 

[4-5] 사람마다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분투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아직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해오던 대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나의 눈빛, 습관, 언어생활, 사고방식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어떤 말씀을 붙잡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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