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을 바꾸는 사람
(8. 24. 2014)

새 학기 강의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할 때가 있다. 맨 앞줄 학생부터 시작한다. “OO학과 3학년 OOO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이렇게 말을 하면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이 이 형태로 이야기한다. 난 어떻게 살았고,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한다고 몇 마디 덧붙일 만도 한데 결코 변하는 법이 없다. 좀 다르게 이야기 하려고 하면 꼭 옆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야 튀지 좀 마

 

사람은 언제나 프레임에 영향을 받는다. 순 우리말로 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쉽다. 사람들은 어떻게 판을 짜느냐에 따라 그 판에 영향을 받는다. 단순한 프레임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단순해 진다. 복잡한 판에서는 모든 사람이 복잡해 진다. 좋은 프레임, 좋은 판을 만들어야 그 강의실, 그 가족, 그 공동체가 좋은 곳이 된다.

 

우리 진에서는 자기소개를 할 때 이기신생아를 사용한다. “이기적인 신생아라고 외우면 쉽다. 몇 년 간 자기소개를 하자고 하면 이름만 이야기하는 청년들을 보며 지쳤다. 어떻게 더 말을 이끌어 낼까 고민하다가 만들어 낸 프레임이다. “(이름), (기수), (신앙생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생활을 하며 사는지), (하고싶은 말)” 이렇게 할 말의 테마를 정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말의 재주가 없는 사람도, 대화의 스킬이 부족한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하면서 풍성해진다. 좋은 프레임은 쑥스럽고, 아이디어 없고, 재능이 부족한 수 많은 사람들을 풍성한 관계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어떤 점이 재미있냐고 물으면 대부분 몸 개그를 좋아한다고 한다. 왜 예능에는 몸 개그가 많은가? 몸 개그를 잘하는 게스트, 몸 개그를 잘하는 진행자가 나와서 그런가? 결코 그렇지 않다. 몸 개그가 나올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램의 프레임을 짰기 때문에 그렇다.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라. 꼭 게스트와 함께 몸 개그가 나올만한 몸풀기 게임을 한다. 본 게임에 들어가면 꼭 물에 빠지고, 시궁창에 떨어지고, 더러운 것이 잔뜩 묻는 거대한 프레임이 짜여져 있다. 그냥 그곳을 지나가기만 해도 몸 개그가 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판을 짜는 것, 그것이 프레임의 힘이다.

 

예수님은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시는 분이다. 강도 만난 사람이 있었다. 제사장은 그를 보고 그냥 지나갔다.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도와줬다. 이 이야기 후에 물으신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0:36) 이 질문은너도 사마리아인처럼 착한 사람 되세요라는 뜻이 아니다. 강도 만난 사람 입장에서 누가 이웃이겠느냐는 질문이다.

 

강도 만난 사람 입장에서 누가 이웃인가? 도와준 사람만이 이웃이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네 이웃을 도와라가 아니었다. “네 이웃은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메시지였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내 스타일인 동료들만 나의 이웃, 나의 친구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프레임을 깨신 것이다. 이웃이라는 프레임을 재정의하신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고 싶거든 프레임을 점검하라. 대화의 프레임, 프로그램 진행 순서의 프레임, 내가 맡은 공동체의 생각의 프레임을 점검하라. 그 프레임이 악영향을 미치고 있거든 예수님처럼 프레임을 바꾸는 이야기를 던지라. 판을 바꾸는 시도를 하라. 따뜻함, 진심, 애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좋은 가치들은 모두 좋은 프레임에 담겨야 한다. 좋은 프레임을 만드는 자가 되라. 리더가 되는 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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