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보기 vs. 살아내기
(8. 3. 2014)


 

사람의 마음은 언제 가장 무거워지는가?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이다. 대학생활은 청춘의 낭만이다. 그러나 시험 한 번 망치면 낭만이 낭패가 된다. 몇 년 간의 고시 준비 후 떨어진 친구를 만나보았는가? 온갖 절망으로 괴로워 한다. 토플 점수가 낮아서 교환학생에 떨어진 친구는 어떤가? 평생 영어라면 치를 떤다.

 

시험이 삶을 사로잡으면 선행학습에 빠진다. 고교 선행과정, 대학 선행과정, 이젠 군대에서 어떻게 빨리 군복을 갈아입는지 가르치는 군대 선행 학원까지 생겼다. 평생 시험만 두려워 하는 삶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시험이 아무리 중요해도, 삶의 본질은 시험보기가 아니다. 삶의 본질은 살아내기이다. 시험은 입구까지만 데려다 준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살아내기'로 승부해야 한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모든 것은 시험으로 얻을 수 없다. 살아내기로 결심해야 얻을 수 있다.

 

소개팅은 시험이다. 그러나 사랑은 소개팅으로 얻을 수 없다사랑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려면, 온갖 문제와 갈등이 살아있는 둘 만의 관계를 살아내기로 결심해야 얻을 수 있다. 살아내기를 피하는 사람일 수록 시험보기에 집착한다. 소개팅, 미팅, 클럽의 원나잇에 집착하는 훈남 훈녀들에 속지말라. 그들은 모두 살아낼 실력이 없어서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더 좋은 곳을 가기 위해 시험을 보려는 취준생들이 많다. 물어보면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건 사실 핑계다. 속에는 다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 회사에서 인정받을 자신은 없습니다. 이 갈등을 풀어가는 건 싫습니다." 똑똑해서 시험보는게 아니라, 살아내기 두려워서 시험보는 것이다. 갈등 푸는 건 자신 없지만, 시험만 보는건 자신 있으니까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옮겨만 다니다가 삶이 허무해진다.

 

살아내기로 결심하면 삶이 풀리기 시작한다. 영어를 시험으로 접근하면 평생 스트레스다. 그러지말고 영어를 살아내기로 결심해보라. 이해가 안 되도 매일 듣기로 결심하고, 표현히 안 되도 매일 접하는 구조로 삶을 디자인해보라. 그러면 영어하는 사람이 된다. 영어는 시험 보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왜 유학생이 영어를 잘하는가? 훌륭한 해외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라, 그냥 영어를 살아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자신을 던졌기 때문이다.

 

최근 입대를 미루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 군대를 회피하는가? "잘 할 수 있을까? 군대라는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까?" 라는 시험 중심의 두려움 때문이다. 군대는 시험 보는 곳이 아니다. 잘하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군대를 살아내기로 결심한 사람이 군대에 간다. 이것은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이다.

 

우리 진은 별다른 간사교육이 없다. 몇 가지 팁과 원칙들만 제시할 뿐이다. 간사는 팀모임 한 번 잘해서 시험에 통과하는 자리가 아니다. 재능 있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간사를 살아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간사를 하는 것이다. 간사의 삶이 싫다는 사람에게는 간사를 맡기면 안 된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간사의 삶을 살아내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보라. 그러면 방법이 나오고, 전략이 나오고, 성장을 경험한다.

 

예수님에게도 처음엔 십자가가 시험처럼 다가오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살아내기로 결심하셨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나의 삶에 다가오는 십자가를 끌어안기로 결심하는 삶. 예수님은 그 길을 걸어가셨다.

 

자꾸 시험으로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라. 자꾸 몇 점 맞았다고 자랑하지 말라. 헛된 자랑 그만하고, 합격한 그곳에서, 들어간 그곳에서, 다가온 그 상황에서 '살아내기'를 준비하라. 그것이 십자가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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