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달지 않는 삶”
(9. 7. 2014)
이 시대에 일방적인 전달은 힘이 없다. 소통해야 인정받는다. 누군가 글을 쓰면, 그 생각에 나의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 뉴스 기사가 올라오면,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댓글 기능이 있다. “나도 할 말이 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목소리이다.
모든 인풋(input)은 충돌을 일으킨다. 책을 읽는다. 다 동의가 되는가? 마음에서 반발심이 일어난다. 뉴스 기사를 읽는다. 다 동의할 수 있는가? 속이 불편하다. 설교를 듣는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만 들리는가? 갈등이 생긴다. 내가 읽고, 듣고, 보는 모든 것은 내면의 충돌을 일으킨다.
인풋은 내면에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갈등은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그 갈등의 시간을 충분히 거치면 인풋보다 더 좋은 아웃풋을 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과정은 싫다. 고민은 싫다. 그냥 내 생각과 다르면 화부터 낸다. 댓글로 반대, 분노, 비판만 쏟아놓는 것이다. 댓글은 아무 창조성도 없다. 젊음이 이 댓글의 유혹에 빠지면, 그 날부터 꼰대가 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나온 기사를 보자. “모피아, 관피아에 이어 이제는 서강학파”라는 기사가 떴다. 모피아는 재정경제부 출신 관료들의 인사 비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관피아는 고위 관료들의 비리를 뜻한다. 이제는 서강대도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번 대통령의 출신학교가 서강대라서 그렇다. 베스트 댓글을 보자. “서강학파?ㅋㅋㅋ 서강대 전자공학과 나온년?ㅋㅋㅋ 비정상을 정상화한다고 꼴깝치던년?ㅋㅋㅋ” 권력의 탐욕에 대해 화가 난 것 같다. 추천수도 높다. 그러나 이 댓글은 아무 창조성이 없다.
창조성은 댓글이 아닌 침묵과 고민에서 생긴다. 왜 권력을 가지면 부패하는가? 왜 모든 인간이 그러는가? 이 하나의 기사로도 모든 철학적 고민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묵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패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예레미야 17:9) 침묵하고 고민하면 인간을 바라보는 창조적 묵상이 나온다. 나라면 그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겸손해진다. 댓글을 남기는 대신 삶의 문제를 하나님과 고민하면 내면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청년이 성장하는 지름길이다.
젊은이가 피해야 할 최악의 모습이 있다. “구시렁거리는 삶”이다. 댓글로 구시렁, 카톡으로 구시렁, 뒷담화 하며 구시렁. 구시렁대는 순간 모든 창조성이 죽는다. 모든 성장이 막힌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 그 상태를 묵상과 연결시켜야 한다. 잠시 침묵하고, 충분히 고민하며 시간을 끌어야 한다. 고민과 하나님을, 분노와 성경을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야 인풋보다 더 가치 있는 아웃풋이 나온다.
당장 지금부터 댓글 달지 않기로 결심하라. 딴지 걸지 않기로 마음 먹으라. 남의 말에 토 달지 않기로 다짐하라. 그때부터 창조성이 살아날 것이다. 댓글 달며 살기엔 당신의 청춘은 너무 아깝다. 댓글이 아닌 묵상을 택하라. 댓글이 아닌 침묵을 택하라. 창조의 삶을 누리는 청춘을 기대한다. 분명 더 나은 아웃풋을 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복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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