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 좋아진 것이다.”
(3. 26. 2017.)

마태복음 6:24

 

야식을 좋아하던 청년이 이제 야식 먹기 질렸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질린게 아니었다. 건강을 관리했을 때의 유익을 안 것이다. 야식이 질렸다는 말은 핑계였다. 건강 관리가 좋아진 것이었다.

 

자기 할 일에 몰두하던 젊은이가 여유를 부리기 시작한다. “공부 해봐야 뭐 하겠어요말한다. 공부가 싫어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밤마다 교제하는 사람을 만나러 나간다. 싫어진다는 말은 핑계다. 다른 것이 좋아진 것이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하여 갑자기 각종 문제점과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발을 빼려고 하거든, 재빨리 포착하라. 다른 중요한 것이 생긴 것이다. 사람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사정이 생긴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싫어지는 것이다. 갑자기 무언가 싫어졌다면, 가치 없어졌다면, 기억하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뀐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돈과 하나님을 비교하신다. 하나님이 싫어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돈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예수님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의 영원한 영광과, 십자가가 경쟁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시고, 영광을 싫어하셨다.” 영광을 거부한 이유는 영광에 질렸기 때문이 아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것이 좋으셨기 때문이다.”

 

우상은 하나님과 경쟁한다. 우상 경쟁에서는 죽는 한 놈이 나와야 한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죽이고 나를 살리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무엇이 싫어졌는가? 그 반대쪽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 영광을 싫어하시고 나를 좋아하신 그 분을 바라보라. 그분을 반대하는 것이 다 싫어지는 신비를 경험할 것이다.

 

[1-3] 갑자기 좋았던 것이 싫어지고, 싫어졌던 것이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까? 변화 뒤에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는 것일까요?

 

[4] 마태복음 624절을 읽어봅시다. 두 가지 대상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두 대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5-6]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에게도 두 가지 대상이 있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셨습니까? 내 삶에 좋음과 싫음을 재정비 해야할 영역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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