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벗어나면 행복할까"

(5. 29. 2016)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겠다. "진짜 내 속에서 원하는 일을 찾자!" 그러려면 모든 구속 받고 있는 것, 제한되는 것,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생각들을 벗어야 한다.

 

자 이제, 왜 사람들이 트렌스젠더가 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진정 순수한 나의 내면을 찾고 싶었다. 나를 근본부터 구속하는 것을 만났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별이다. 그것이 나를 운명적으로 구속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단순히 남자가, 여자가 되고 싶어서 바꾸는 게 아니다. 성별이 정해진 삶, 환경이 제한된 삶은 행복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워렌버핏은 자신이 부자가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난 덕에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환경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모든 구속된 것을 벗어나야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한다. 그래서 내 삶의 모든 한계가 불행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은 한번도 사람이 인생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제한적인 나의 상황과 관계 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다. 그런데 사회마다 이 말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말하는 기준들을 추구하라는 목소리들이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따라가는 순간 평생 나는 돈이 없고, 부족하며, 외모가 별로라는 생각만 든다. 자유를 찾으라고 말해놓고, 평생 그 안에 우리를 가둔다.

 

이제 보이는가? 특정한 문화마다 사람의 정체성을 만드는 숨겨진 시스템들이 있다. "진짜 내 속에서 원하는 일을 찾자!"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우리나라는 돈, 외모, 학벌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내 속에서 진정 돈과 외모와 학벌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밖에서 나에게 준 목소리이다.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모두 밖에서 온 것이다.

 

성경은 단적으로 이야기 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로마서 8:16)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믿는다. "내게 주신 환경 속에서", "한계 속에서" 나를 평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그래서 소유의 많고 적음, 외모의 정도에 따라서 나의 견고함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많아져도 소유를 자랑하지 않으며, 능력이 많고 적음 때문에 불안하거나 안정감을 느끼지 않는다. 스스로 통제하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내가 오늘 평안한 이유는, 내 인생을 하나님이 온전히 통제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한계를 벗어나야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에 속지 말라. 문화가 나에게 돈으로, 외모로, 성별로 만들어주려는 정체성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라. 내 삶의 모든 저주가 사라지고, 담대함과 확신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1-4] 요즘 사람들은 왜 자신이 가진 것을 심하게 벗어나려고(심지어 성별마저) 발버둥일까요? 주변에 심하게 어떤 상황을 벗어나려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5] 내가 속한 직장이나 학교, 내가 속한 나이 또래에서 사회가 나에게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방식은 무엇입니까? 그와 달리 성경은 나를 어떤 존재라고 규정합니까? 그것이 가치 없게 느껴진다면, 내가 지금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6-7] 시편 139 13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사람의 외모, 소유를 자신이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통제하려다가 불안한 내 삶의 부분들, 통제권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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