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 말고 녹이라"
(12. 27. 2015)

 

상대방에게 화가 많이 난다. 왜 화가 나는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내 기준에 맞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 이제 분노의 원인이 밝혀졌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대로 상대가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을 위반하면 사람은 분노한다. 사람은 분노하면 상대를 깨뜨리기 시작한다.

 

비행기 퍼스트클래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와인은 온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한 남자 승객은 와인의 온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비스 기준 위반인 것이다. 기준에 미달하면 상대를 과감히 깨드려 버리는 우리는 화부터 냈을 것이다. "제정신이야? 시끄럽게 굴지 말고 빨리 다른 와인이나 가져와!" 그런데 그 신사는 상대를 깨뜨리지 않았다. "오늘 서비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종이에 적어둘 테니 확인해주세요." 이것이 "예고"이다. 승무원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종이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와인 온도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 식사 때도 와인을 마시고 싶은데, 다른 걸 마시는 편이 나을까요?" 이것은 "기회"이다. 문장을 살펴보라. 책임을 묻고 깨뜨리는 것에 집중하는 문장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기대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 위해 적은 문장이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기준을 지키고,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상대를 깨뜨리지 않고 녹였다. 이것이 일류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사람이 창조된 목적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분노하신다. 기준을 위반하면 사람들은 분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나에게 분노하고 계시다는 것 아닌가? 맞다. 그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로마서 1 18)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진노를 어떻게 감당하셨는가? 마찬가지로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깨는 방법과 녹이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깨지 않으시고 녹이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녹이는 대신 자신을 깨뜨리셨다. 사람이 기준을 지키지 않은 책임을 자신이 감당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 8) 스스로 깨지면 상대가 녹는다. 기억하라. 당신의 마음이 녹았던 순간, 당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 당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희망은 모두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을, 지갑을, 자존심을 스스로 깨뜨렸기 때문이다.

 

기준만 가지고 상대를 깨지 말라. 내 기준 미달의 사람들을 비난하기 바쁜 꼴불견이 되지 말라. 나를 위해 스스로를 깨뜨리시고 움직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상대가 기준을 못 지킨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지금 당장 움직이라. 그 사람이 기준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우라. 기회를 주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상대가 인정받도록 섬기라. 예수님이 깨지셨기에 내가 깨지지 않고 녹았다. 나를 깨뜨리면 그도 깨지지 않고 녹을 것이다. 깨지 말고 녹이라.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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