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신앙”
(2. 4. 2018.)
누가복음 23:46
편안한 환경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치열함의 연속이다. 남들은 쉽게 누리고, 쉽게 사고, 쉽게 즐거워한다. 그러나 나는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기분이다.
생존을 위한 삶은 쓸데 없는 것을 버리게 만든다. 삶에 불필요한 모든 것을 태운다. 인생에 가장 치열했던 시간을 돌아보라. 합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순간, 한 달을 버티기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버렸던 순간, 성장을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시간관리, 식단관리에 미쳤던 순간. “살려만 주세요”라고 말하던 순간, 그 “생존의 순간”이 있는가? 그때의 겸손, 그때의 단순함, 그때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것을 잃는 순간부터 타락이다.
생존 신앙이 사라졌다. 하루를 버티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던 순수함이 사라졌다. 이제는 하루를 버티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욕심에 하나님이 반응해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욕심쟁이가 되어버렸다. 신앙은 생존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의존적이어야 한다. 걷는 것도,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주의 은혜다. 오늘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원망에서 감사로 방향을 바꾸라. 사람은 생존부터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영광스러워진다.
예수님의 마지막을 기억하라. 위대한 인생의 마지막이니, 많은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지 않았을까? 그의 고백이 너무 단순하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 명색이 예수님인데 부탁할 것이 별로 없다. “재산을 맡깁니다. 제 커리어를 맡깁니다. 심지어 제 육체적 목숨을 맡깁니다” 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유일하게 그가 아버지께 부탁하셨던 것은 자신의 영혼이다. “제 영혼의 생존을 맡깁니다.” 그 고백이 가장 큰 영광이었다. 생존을 맡기셨던 그분의 삶 때문에, 내 삶에 구원이 왔다.
예수를 따른다면서 도대체 무엇을 좇고 있는가? 인생의 마지막, 인생의 영광은 생존신앙이 되어야 한다. 결국 내 영혼을 하나님께서 붙드셔야 한다는 고백만이 남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생존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은, 내 영혼을 강력하게 붙드시고 계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생존의 때에 고백하자. 나의 아버지께 다른 것을 부탁하는 사치를 내려놓자. 나의 영혼을 붙들어 주셔야 한다.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영광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1-2] 생존을 위해 치열해지고, 단순해지고, 겸손해졌던 경험들을 나누어봅시다.
[3-4] 어느새 하나님께 생존을 떠나 다른 것을 부탁하고 있는 나의 사치스러움을 돌아봅시다. 자꾸 무엇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23장 46절을 읽어봅시다. 성부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은 무엇이었습니까?
[5-6] 내 삶의 목표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내 생존을 의지하기 위해 변화되어야 할 내 삶의 생각과 행동들을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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