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신앙”
(4. 22. 2018.)
이사야 1:16-17
교회를 다녀도 고약한 사람들이 많다. 예수를 믿어도 실망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은혜를 체험했는데도,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신앙 따로, 삶 따로이다. 그런 사람들을 실컷 욕하며 살아왔는데 더 큰 일이 발생했다. 어느새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 이후의 삶을 소개한다. “배우는 신앙”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원리, 하나님의 뜻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나열해 놓지는 않는다. 문화와 상황, 연령과 계층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선한 일을 하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이사야 1:17) 첫 구절에 주목하라. “선행을 배우며(learn to do good)” 어떻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가? 배워야 한다.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받아들임이 있어야 한다. 훈련이 있어야 한다. 배우지 않고 선해질 수 없다. 경험을 통해 선행이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 지역의 다문화 가정을 섬기는 일을 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가정들이었다. 무엇이 필요할까? 쌀을 샀다. 영양이 부족할테니까. 오판이었다. 쌀은 여러 곳에서 많이 와서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일과 육아로 바쁜 가정에 쌀을 요리할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급하게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햄, 쉽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김, 육아용 기저귀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생각도 못했던 물품들이었다. 선행은 배워야 할 수 있다.
논리와 이론으로 선행을 외치는 자들을 경계하라. 삶의 어느 영역에서 선행을 배우고 있는지 확인하라. 몸으로 배우는 자가 선행을 하는 자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요구를 어떻게 이루셨는가? 배워서 이루셨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learned)”(히브리서 5:8) 십자가와 부활은 배움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배움이 곧 나의 구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의 삶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배우게 하시는 것에 순종할 것이다. 배움의 과정에 십자가가 있겠으나, 배움 이후에 부활과 같은 유익과 성장이 있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배움의 과정을 생략한 구원은 없다. 배움이 없는 부활은 없다. 선행을 원하거든 배움의 과정을 계획하라. 평생의 삶에 꾸준한 배움에 머물겠다고 다짐하라. 그것이 겸손이다. 그것이 순종이다.
[1]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정말 뻔뻔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내 자신도 그런 모습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습니까?
[2-4] 이사야 1장 17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선행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라고 말합니까? 내가 배움을 통해 바뀌어진 생활의 습관과 생각을 나누어봅시다.
[5-6]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배우게 하시는 것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왜 확신할 수 있습니까? 배움의 과정에 좀 더 힘써야 할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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