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 없는 예배”
(3. 15. 2020.)
요한일서 4:5-6
아무리 말해도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변하지 않는 상대 앞에 분노와 답답함은 커진다. 상대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절망이다.
듣지 않는 상대 앞에 서는 것이 예배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요한일서 4:5)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상대 앞에 서게 하신다. 내 말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반응 없는 예배’이다.
문제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관계는 내가 깨는 것이다. 상대는 원래부터 잘못했었고, 상대는 원래부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반응 없는 예배를 포기할 때 문제가 생긴다. “더 이상 참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도 내 방식대로 하겠다, 이제 그냥 무시할 거다.” 상대는 그대로였는데, 제 풀에 지쳐 내 마음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와 다르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6절)
반응 없는 자 앞에 서는 것이 유익할까? 그렇다.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았던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우리 앞에 서셔서, 예배드리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십자가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대책 없이, 맹목적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다.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은 사람 앞에서, 반응 없는 예배를 드리라.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말하라. 우리 앞에 서셨던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그 상황 속에 선한 길을 내어 주시리라. 성도의 일상의 예배가 바로 이것이다.
[1-2]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을 상대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내 말을 듣지 않는 상대로 인해 겪었던 스트레스를 나누어봅시다.
[3] 요한일서 4장 5절을 읽어봅시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6절을 읽어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다릅니까? 보통 그 사람과 관계는 언제 깨집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포기한 자는 누구입니까?
[4-5] 우리는 이유 없이 반응 없는 자 앞에 서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반응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하셨던 고백은 무엇입니까? 한 주간 반응 없는 예배를 지속해야 할 우리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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