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있으면 두렵지 않다”
(5. 4. 2014)
상처는 매우 상대적인 것이다. 나를 욕하는 직장 상사를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직장생활 해야 하나 싶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팀 사람들, 다 그 사람 싫어해. 너도 당했어? 나도 똑같이 당했어. 너 아까 무시당하는 거 보는데 내가 다 화나더라” 그때부터 묘한 힘이 난다. 당하면 당할수록 힘이 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당할 때, 그 마음을 아는 동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더 이상 상처는 상처가 아니다. 오히려 어려움 때문에 서로가 친밀해 진다. 괴롭게 하는 그 상사를 함께 험담하면서 오히려 새 힘을 얻는다.
왜 사람들이 친구를 만나면 자기 힘든 이야기를 하는가? 단순히 답답함을 풀려는 게 아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내가 당한 어려움을 공감 해주는 나의 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환경이 좋아진다고 만족하지 않는다.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만족하지 않는다. 환경이 좋아져도, 대우가 좋아져도 어려움은 늘 있다. 세상이 찾는 것은 내 어려움이 무엇인지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라. 아픔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되라. 그러면 무조건 리더가 된다.
하나님은 나를 남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키우신다. 예수님은 남을 잘 이해하는 분이셨다. 하늘에만 계신 게 아니라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렇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아신다. 몸이 아픈게 어떤 것인지, 돈이 없는게 어떤 기분인지, 유혹 받는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는 법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5) 그래서 예수님께 가면 공감이 가능하다. 이해가 가능하다. 승리가 가능하다. 그것이 예수님의 매력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대통령도 아니었고, 기자도 아니었고, 다이빙 벨을 만든 이종인도 아니었다. 직접 아들을 잃어본 천안함 유족들이었다. 그들은 책임소재를 따지지 않았다. 분노하지 않았다. 묵묵히 유가족 옆에서 모든 잡일들을 감당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천안함 유가족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아는 자들이었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편을 만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편이 되어주셨다. 나도 이제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주변의 아픔을 아는 자가 되라.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라. 늘 내 주변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라. 내 편이 있으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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