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주는 유익
(3. 16. 2014)

 

고난은 초대장을 들지 않고 찾아온다. 오라고 한 적이 없는데 온다. 어렸을 때 왜 간호사 누나가 엉덩이를 톡톡 치고 나서 주사를 놓는지 궁금했다. 간호사 누나가 답해줬다. “살이 놀라지 않게 하려고 그런 거야나는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내 엉덩이는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엉덩이를 치지 않고 주사를 바로 맞았다. 한 달 간 엉덩이에 멍이 들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주사 바늘이 더 아프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는 고난이 더 아프다. 고난은 그런 것이다. 엉덩이를 멍들게 만든다. 그러나 주사 바늘은 몸 전체를 건강하게 한다. 고난은 아프지만 내 삶 전체를 새롭게 하는 힘이 있다.

 

고난은 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세상은 인과관계의 프레임에 사로잡혀있다. “착하게 살았더니 잘 풀리는 거 봐”, “그렇게 사람 못살게 굴더니 벌 받았네모든 사람은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한다. 기독교는 이유를 뛰어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인과관계의 프레임을 벗어나게 한다. 삶을 살아보라. 왜 그런지 다 설명할 수 없다. 인과관계가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성경의 아삽이라는 인물이 그걸 일찍부터 깨달았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시편 73:12) 그래서 기독교는 왜 그 아픔을 당하는지, 왜 잘 되는지 함부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성경은 고난의 원인에 관심이 없다. 성경은 고난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집중한다.

 

고난의 목적은 삶을 영원한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고난 당하면 돈이 사라진다. 친구가 사라진다. 명예가 사라진다. 심지어는 가족도, 사랑도 사라진다. 그러나 영원의 세계가 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편 73:26) 영원히 남는 내 삶의 재산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것을 깨닫는 시간이 고난이다. 그래서 고난 당하면 삶이 단순해진다. 고난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즐기던 취미, 관심 갖던 쇼핑, 늘어지는 게으름이 사라진다. 고난 감당과 기도. 두 가지 밖에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면서 영원하지 않은 나의 삶의 부분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고난은 영원을 향한 문을 연다.

 

고난 당하면 모든 것을 잃기만 하는 것일까?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한 욥이라는 사람이 있다. 재산을 다 잃고, 아들 일곱, 딸 셋이 죽었다. 고난이 지난 후 하나님은 재산을 딱 두 배로 늘려주셨다. 하지만 자녀는 다시 아들 일곱, 딸 셋 그대로 낳았다. 왜 하나님이 자녀는 두 배를 주시지 않았을까? 그 자녀들 다 천국에 살아있다는 뜻이다. 그 자녀들 잃은 것 아니라는 뜻이다. 고난은 결코 잃어버리는 싸움이 아니다. 고난은 영원을 얻는 싸움이다. 고난을 통해 없어져버릴 유한한 것을 버리라. 그리고 영원한 소유를 얻으라. 하나님이 당신의 영원한 전부가 되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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