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이유”
(12. 14. 2014)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사모하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위대함, 아름다움, 감동에 대한 본능적 경외감이 있다. 노래방에서 친구의 노래는 시끄럽지만, 라이브 콘서트 가수의 노래는 가슴이 뛴다. 사람은 아름다움을 보면 참을 수 없다. “미치겠다! 아름답다!”라고 표현해야만 속이 후련하다. 모든 사람은 아름다움에 굶주려 있다.
아름다움은 언어와 곡조로 전달된다. 왜 사람들이 돈을 들여가며 컬러링을 하는가? 그 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왜 친구들한테 “이 노래 대박이야!”라며 들어보라고 하는가? 그 음악에서 느낀 엄청난 아름다움을 전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되면서 학생들은 가요에 미친다. 가사를 적어서 외우고 다닌다. 왜 그러는 것인가? “그 가사가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감정이 그 곡에 있다. 내가 원하던 표현이 그 가사에 있다. 사람은 그 단어, 그 노래를 만날 때 감정이 풍성해진다. 그 때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한계를 넘어 폭발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 순간이 바로 사랑이 깊어지는 타이밍이다.
하나님은 정보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격으로 다가오신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미지근한 이유는 예배를 강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의에는 감정이 없다. 정보 전달만 있다. 그러나 예배는 강의가 아니다. 예배에는 찬양이 있다. 찬양은 정보전달이 목적이 아니다. 찬양은 대충 분위기 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졸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해 내 스스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마음, 그 감정을 터뜨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더 좋은 가사, 더 좋은 표현, 더 좋은 곡조에 당신의 마음 실어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찬양의 능력이다.
요즘 사랑하는 그 대상과 서먹한가? 하나님에 대해서 무뎌졌는가? 그럴 땐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강의를 들으려 하지 말고, 그 대상을 향한 수준 높은 찬양이 있는지 점검해보라. 더 좋은 노래, 더 좋은 표현, 더 좋은 단어를 찾으라.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을 향한 나의 감정은 찬양의 수준만큼만 갈 수 있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시편 150:1,6) 오늘도 그 대상을 생각하며 좋은 노래를 찾으라. 좋은 가사를 읊으라. 당신의 감성이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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