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의 치유
(10. 4. 2020.)

잠언 14:4, 16:4

 

명절이 피곤한 이유는 무엇인가? 익숙하지 않은 여러 관계 속에 서로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격을 상대하다 보니 별의 별 피곤함이 다 생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지”, “말을 저런 식으로 밖에 못하나” 일상을 벗어나는 신선함과 오랜만의 반가움도 있지만, 한 두 가지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에 모든 기분을 망친다.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니,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서로 싸운다.

 

사람은 하나님이 적당하게 관리하신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언 16:4) 연휴 동안 내 생각에 적당해 보이지 않는 인간에게 한 소리 듣고 왔는가? 그냥 기분을 풀고 여유를 되찾으라. 그래도 앞으로 잘해주라. 뒤엎고, 받아 치고, 연락 끊거나 욕하지 말라. 하나님이 적당하게 다루실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적당히 잘 대해주라. 인격을 끝까지 존중하는 것은 사람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중요한 순종이다. 그래야 당신도 평안을 찾을 것이다.

 

화내고 고치려고 하지 말고 좋은 역할이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라.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언 14:4) 무식한 아빠지만 그래도 살아 계신 게 좋지 않은가? 답답한 엄마지만 그래도 우리 가정에 힘이 되지 않나? 깨끗한 가정, 깨끗한 관계를 원하지 말라. 원래 유익은 더러운 데서 오는 것이다. 더럽다고 인격까지 무시하지 말라. 끝까지 인격을 사랑하라. 더러움 속에 유익이 있다.

 

악인에게, 더러운 곳에서 당하신 분이 있다.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거짓 재판이었고, 모함이었다. 당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인격을 존중하는 여유를 보여주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누가복음 23:34) 십자가는 더럽고 추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얻으신 것이 있다. 부활이었다. 우리의 구원이었다.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도 소망이 있다. 너무 싫은 상대 때문에 내 삶이 마비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다시 여유를 찾을 것이다. 관계 속에 더러움을 강박적으로 피하지 않겠다. 더러운 구유 속에서 소의 힘으로 얻는 유익을 누리리라. 예수님이 내 삶에 오염된 모든 죄를 가져가셨으니, 내게 허락하신 더럽고 아쉬운 관계 속에서, 소망과 유익이 피어나리라. 이것이 명절 증후군을 회복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1] 명절 혹은 기념일에 오랜만에 친척이나 가족을 만나면서 생기는 관계적인 어려움은 무엇이 있습니까? 대화 중에 화가 나거나, 답답하거나, 상처를 받았던 경험들을 나누어봅시다.

 

[2-3] 잠언 16장 4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악인을 누가 창조하시고, 누가 통제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인격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관계 속에서 끝까지 해서는 안 될 말, 끝까지 지켜줘야 할 행동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누가복음 23장 34절 읽어봅시다. 악인들 앞에서, 더러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태도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내 주변에 허락하신 관계와 그에 파생된 더러운 것들은 내 삶의 유익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누가 더러움을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까? 더럽고 아쉬운 관계 속에서 여유와 소망을 회복하기 위한 삶의 다짐들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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