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즐거움”
(9. 6. 2020.)
베드로후서 2:20-22
20년 전 전국에서 2002 한일 월드컵 경기 유치를 위한 도시 간의 경쟁이 있었다. 당시 심재덕 수원시장은 공중 화장실 개선 운동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깨끗한 화장실 문화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화장실은 원래 더러운 것 아닌가? 모두가 그렇게 살지 않나? 하지만 막상 깨끗한 화장실을 경험하면, 더러운 곳에 다시는 못 간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깨끗함을 갈망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깨끗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거룩’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본능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과 육체가 거룩해진다. 영혼은 곧바로 거듭난다. 육체도 죽음 이후 부활체를 입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영원한 깨끗함이다.
예수님을 믿었으니, 다시 죄를 지어도 괜찮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깨끗함의 즐거움을 몰라서 그렇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대답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베드로후서 2:20) 다시 죄 지으면, 어려움이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깨끗한 화장실 쓰다가, 더러운 화장실 다시 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정말 하기 싫은 짓이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보라.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관리해보라. 더러워지는 순간, 벌써 느낌이 다르다. 다시 더러워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 그것이 성화(sanctification)이다.
연약함 때문에 다시 죄를 짓고, 넘어질 때마다 기억하라. 지금 내 처지를 두고 더럽다고 주저 앉으면 안된다. 더러워지신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내 대신 더러워지신 주님 때문에, 난 여전히 주님 앞에 깨끗하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도서 2:14)
깨끗함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말라. 개가 그 토하였던 곳에,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가는 짓이다.(22) 더 깨끗하게 살라.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관리하라. 죄의 욕구가 크다고 말하지 말라. 깨끗함의 욕구가 훨씬 크다.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경험해 본 자만 안다.
[1-2] 사람 안에는 본능 적으로 깨끗함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깨끗한 사람, 깨끗한 몸, 깨끗한 카페, 깨끗한 무언가에 대한 감탄을 했던 것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3] 베드로후서 2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믿은 후, 다시 더러운 죄를 지어도 상관 없다는 생각은 왜 틀렸습니까? 삶 속에서 더러움을 벗어난 후에, 다시 더러워지고 싶지 않은 갈망이 생긴 적이 있습니까? 물리적인 것, 영적인 것 모두 나누어봅시다.
[4-5] 디도서 2장 1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죄를 지어 나의 상태가 더러울 때도 영적인 나의 실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깨끗함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나의 다짐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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