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원인"(4. 17. 2016)
"허무의 원인"
(4. 17. 2016)
언제 허무해지는가? 목표에 빗맞았을 때이다. 목표에 빗맞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죄라고 한다. 히브리어 '하타'는 목표를 빗나간다는 뜻의 동사이다. 그 단어에서 '하타트'가 나왔다. '죄'라는 뜻이다. 죄란 목표를 빗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것이다. 그것이 '코람데오'(coram Deo)이다. coram은 '앞에'라는 뜻이고, 'Deo'는 하나님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종교개혁자들의 구호였다. 목표를 빗나가면, 사람은 허무해진다. 성공하지 못해서 허무한 게 아니다. 임재 밖에 있으면 허무해지는 것이다.
인생을 순식간에 허무로 몰아가는 방법이 있다. 무대 위와 무대 아래를 구분하는 것이다.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임재 밖을 구분하는 것이다. 한 까페에 갔다. 난 아침마다 베이글을 자주 먹는 까페 VIP이다. 사장님은 교회 집사님이다. 집사님은 나를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그런데 아침에 주문이 많이 밀려서 나와 다른 사람의 주문이 바뀌었다. 큰 실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집사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하는 것이다. "어휴, 어휴" 한숨을 내쉬며 아르바이트생이 듣기 힘들 정도로 계속 화풀이를 했다. 집사가 맞나 싶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대 위에서 동행한다는 것이 아니다. 임재는 예배를 드릴 때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잘못했을 때, 집에 혼자 있을 때, 부모님과 의견이 안 맞을 때, 학교에 지각 했을 때, 음식이 잘못 나왔을 때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교회에 왔다면, 교회의 직분자들이 예배 후에 무슨 말과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살펴보라. 그 사람이 임재의 인생을 사는지, 무대의 인생을 사는지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 완벽, 기쁨, 즐거움만으로 인생을 디자인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임재'로 디자인하라고 하셨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16편 8절)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자기 앞에 두는 사람이었다. 임재 안에 살았다. 그래서 삶의 여러 고난 속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임재로 살라. 말씀으로 살라. 이것이 허무를 벗어나는 길이다.
[1-2] 삶에서 "하나님이 이것을 보고 계신다, 알고 계신다"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그것이 위로가 되거나, 긴장감을 주었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3-4] 우리 모두는 무대 위와 아래의 모습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임재를 벗어나기 쉬운 삶의 영역은 어느 장소, 어느 시간, 어느 사람에 처해있을 때입니까?
[5] 기쁨, 성공, 즐거움의 상황일 때만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혹시 기쁨, 성공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