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패배할 것 같다는 믿음"(1. 10. 2016)
"하나님이 패배할 것 같다는 믿음"
(1. 10. 2016)
성경은 하나님을 '불'로 묘사한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브리서 12:29)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불이 사람에게 옮겨 붙는다. 사람의 어디에 옮겨 붙는다는 말인가? '삶'에 옮겨 붙는다. 삶은 하나님의 불이 붙는 재료이다. 삶을 외면한 신앙이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은 없다. 삶은 하나님께 내어드린 부분만큼만 하나님의 불이 붙는다.
평생 부모의 구원을 놓고 기도했던 어른을 만난 적이 있다. 하나님이 그 삶 속에서 일하셨다. 많은 세월이 필요했고, 많은 분투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 부모 구원이라는 삶의 부분을 내어드렸더니, 불이 붙은 것이다. "내가 여태 왜 교회를 안 갔는지 몰라" 그 부모의 고백이다. 돈으로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어른은 그것을 체험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을 맛 본 자의 영광이다.
우리는 상황에 적당히 타협한다. 상황이 변화되긴 어려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객관적인 분석이라고 말한다. 아니, 그것은 객관이 아니라 믿음이다. 하나님이 질 것 같다는 믿음. 하나님이 상황에 패배할 것 같다는 믿음이다. 당신은 절대 공을 뺏길 것 같은 선수에게 패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 공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패배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상황이 승리하는 것이다.
예수님 옆 십자가에 못박힌 행악자가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말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누가복음 23:42) 행악자는 자신이 변화되기 어려운 상황을, 너무 늦은 시간에 예수님께 드렸다. 변화되기엔 너무 늦었다. 변화되기엔 너무 죽기 직전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기막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행악자는 이 땅에서 방탕한 삶으로서 나는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삶의 시작을 열어주셨다. 예수님께 늦은 상황과 늦은 시간이란 없다. 그 분은 상황과 시간을 통치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시간 밖에 계신 분이다. 예수님은 상황 밖에 계신 분이다.
태울 재료가 있어야 불이 붙는다. 재료가 없이 불 붙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불이 붙으려면 먼저 재료를 내어드려야 한다. 움켜쥐고 있는 삶의 부분을 내어드리라. 상황과 시간을 마음대로 판단하려 하지 말라. 어렵다고 늦었다고 외면하지 말라. 내어드리면 살아나는데 끝까지 현상 유지하며 고집부리지 말라. 그 부분에 대해 오늘 살려달라고 말하라. 그 상황에 대해 오늘 기억해달라고 부르짖으라. 낙원을 맛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