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남으시는 순간"(9. 24. 2017.)
"하나님만 남으시는 순간"
(9. 24. 2017.)
시편 57:1-11
인생의 나쁜 결과를 맞이하는 성도들의 착각이 있다. 하나님이 끝내 나를 버리셨다는 착각이다. "신실하지 않았던 내 신앙 때문에 결국 이 사업이 안 되게 하시는구나", "그 실수 때문에 결국 저 자리까지는 못 가게 하시는구나", "결국 내 죄 때문에 이 병을 주시는구나", 하나님이 끝내 나에게 심판을 시작하고 계시다는 두려움은, 나를 깊은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고 계신 것인가? 모든 것을 다 잃어가고 있다면 기억하라. 다 무너진 나의 삶은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만이 계속 옆에 서 계시다는 것이 보여야 한다. 건강과 물질과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은 하나님이 떠나시는 순간이 아니다. "하나님만 남으시는 순간이다." 다 떠나고, 다 무너졌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이 보인다. 그때 깨닫는다. 내 삶의 무너짐은 심판이 아니었다. (1)세상을 사랑하고 (2)하나님을 미워하며 살았어도, 끝내 내 삶에는 (1)세상은 떠나가도 (2)하나님은 남으신다. 그분만이 나를 온전히 품으신다는 확신, 하나님과의 동행은 바로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다.
얼마나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하나님이 다시 돌아와 주실까? 그 질문은 이미 틀렸다. 하나님은 이미 옆에 계신데, 나는 계속 하나님께 잘 보여서 내 삶의 수준만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 내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너진 내 커리어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다. 내가 다시 붙들어야 할 것은 꼬여버린 내 사업이 아니라 더러운 나를 여전히 품으시는 하나님의 용서이다.
징계 중에,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괜히 하나님께 잘 보여서 고난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억지인 줄 알았다. 아니다. 그들은 진심이었다. 결국은 망해버린 자신의 삶 곁에서 끝까지 나를 기다리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내 삶의 자리에, 하나님은 그대로 남아계셨다. 모두가 나를 떠날 때, 나를 다시 일으키셔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구원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고난 속에서 주님만이 나를 이끄신다. 이제 주님이 나의 구원이 되신다. 그가 나를 놓지 않으신다는 확신이, 징계와 고통 중에도 소망을 갖게 한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시편 57:1) 그의 날개 그늘은 내 삶을 보호하려 이 땅에 직접 내려오셨다. 예수님이다. 내 삶에 주의 날개는 거두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 십자가 위에 예수님을 보호하던 주의 날개가 대신 거두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징계의 심판을 모두 맞으셨다. 그래도 남아계셨다. 나를 건지시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내 삶에 주와 함께 걷는 재앙은, 결코 재앙으로 끝나지 않고 나를 구원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그는 재앙을 주시기 위해 내 옆에 남아 계신 것이 아니다. 다시 일으키시려고 계속 서 계신 것이다.
망했는가? 하나님을 대놓고 거역하다가 큰 위기에 놓였는가? 그 자리에 주님만이 남아 계신지, 그것만 확인하라. 그러면 재앙도 문제 없다. 내 곁에 계신 그가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만 남으시는 순간. 우리 인생엔 그 순간이 필요하다.
[1] 하나님이 결국은 나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 삶에 많은 한계와 후회,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실패를 맞이했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2-3] 모든 것이 떠나가는 순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내 삶의 좌절의 자리에서, 여전이 나와 함께 남아계신 그분을 느꼈던 체험이 있습니까?
[4-5] 삶의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아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나의 구원의 대상은 어떻게 바뀐 것입니까? 그것은 왜 믿을만합니까? 주의 날개 아래에 있다는 확신을 다시 점검해야 할 내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