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은혜 구원 vs. 실력 구원"(6. 11. 2016)

서창희 2016. 6. 9. 23:24

"은혜 구원 vs. 실력 구원"

(6. 11. 2016)

 

그리스도인은 행위로 구원 받지 않는다. 실력으로 구원 받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것은 죽은 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이다. 내가 오늘 내 실력으로 이 위치에 서 있지 않다. 내 돈으로, 내 외모로, 내 스펙으로 이 자리에 서있지 않다. 그 분이 세우셨다. 그 분이 주셨다. 은혜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은혜로 승리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오늘을 사는 구원관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약속을 주셨다. 새 땅으로 데려간다고 하셨다.(출애굽기 3:8) 그 후 구름기둥, 불기둥, 홍해 건너기 등 온갖 기적을 경험했다. 새로 들어갈 가나안 땅 앞에서 정탐을 시작한다. 은혜 받은 백성이니까, 정탐의 결과도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말이 달라진다.

 

정탐꾼들이 말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올라가서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민수기 13:31)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르게 말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수기 14:9)

 

차이가 무엇인가? 정탐꾼 무리들은 은혜로 여기까지 온 후에 다시 실력으로 구원받으려고 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약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애굽에 있을 때도 약했다. 홍해를 건널 때도 약했다. 한 번도 이스라엘이 강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로 승리했다. 은혜로 여기까지 와 놓고, 이제 은혜가 아닌 실력으로 나를 구원하겠다고 덤비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상황을 다르게 정의한다.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는 하나님의 임재다."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임재하시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것이다. 임재가 곧 승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은혜는 사물이 아니다. 은혜는 가나안 땅이 아니다. 은혜는 어딜 가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약해지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다."

 

은혜는 사물이 아니다. 은혜는 장소가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어디서든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승리와 평안, 확신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어디서든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면 약함과 불안이 엄습해 올 것이다. 하나님과 은혜를 분리시키지 말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은혜가 있다.

 

지금까지 은혜로 왔으면, 약한 그대로 다시 은혜를 붙들라. 조금 승진했다고, 조금 돈 번다고, 조금 예뻐졌다고 실력 내세우지 말라. 우리가 인생에서 평생 깨달아야 할 한가지 진리는 이것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Salvation comes from the LORD)"(요나 2:9)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다. 나는 늘 은혜로 구원받는다. 실력 말고, 장소 말고, 그분의 임재를 구하라. 가나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1] 인생에서 내 실력이 부족하고, 내 인격도 관심도 부족했는데 좋은 기회를 얻거나, 큰 도움을 받았던 경험들을 나누어봅시다.

 

[2-5] 민수기 13:30~14:10 절을 읽어봅시다. 가나안 땅 바로 앞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반응은 왜 나뉘어진 것입니까?

 

[6-7] 어느 정도 상황이 되니 다시 계산하며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내가 원하는 사물, 장소를 분리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