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영화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속의 복음"(5. 15. 2016)

서창희 2016. 5. 12. 10:21

"영화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속의 복음"

(5. 15. 2016)

 

문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영화가 있다. "캡틴아메리카: 시빌워"이다. 주인공 어벤저스(Avengers)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 싸워 왔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에서는 문제가 생겼다. 악을 처단하려다 보니,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는 계속 악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많은 피해를 본 아이언맨(스타크)편하게 일부의 역할만 감당하자고 말한다. "왜 이 고생을 하며 희생해야 하는가?" 영화가 주는 물음이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은 삶에서 하나님을 지웠다.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 없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없어도 인간은 한 동안 "우리 함께 이것을 하자!"라는 주제가 있었다. "산업화 하자! 민주화 하자! 가난탈출 하자! 훌륭한 나라, 돈 잘 버는 회사가 되자!" 이것이 모더니즘이다. 그런데 이후 인간은 삶에서 "함께 해야만 하는 것"도 지웠다. 공통의 목표, 공통의 가치가 없어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 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 희생의 명분이 사라졌다. 희생하며 살 이유가 없다. 그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미국 대선 주자로 트럼프가 득세하고 있다. 강한 미국을 주장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더 이상 세계에 퍼주지 말자는 것이다. 퍼주다 보니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더 이상 희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나라가 스스로 돈 내게 하고, 우리는 우리의 형편이나 잘 살피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움 받는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살기 좋을 때는 그 말이 자랑스러웠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우리나라도 어려운데 다른 곳 돕지 말자는 말이 나온다. 여유가 없으니 희생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희생할 명분이 없다. 내가 살아야 한다. 문화는 국가의 이데올로기도 지배한다.

 

기독교는 이 모든 문화를 뒤집는다. 이웃사랑과 희생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이다. 기독교의 인간관은 다르다. 사람은 이미 희생의 수혜를 받은 자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에베소서 52)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었다. 영원한 삶을 얻었다. 내가 죽어도 내 몸을 다시 얻는다. 잃었던 세상의 부유함과 인정을 모두 주님께 다 돌려받는다. 기독교의 희생은 구원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의 자연스러운 삶의 결과이다. 당신이 구원을 누리고 있는가? 희생에 대한 태도를 점검하라.

 

26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교회 감독은 그곳의 교회 성도들의 섬김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형제들은 대부분이 넘치는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서로 의지하여 두려움이 없이 병자들을 데려와 세심하게 보살피고 그리스도 안에서 시중을 들었으므로, 병자들과 똑같이 지극히 기쁜 마음으로 죽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앓는 병에 전염되면서, 다른 사람의 병에 자기도 걸리면서, 자발적으로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이렇게 해서 우리 형제들은 가장 건강한 사람들까지도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들은 성도들의 몸을 품에 안아 눈을 감겨 주고 입을 닫아 주며 어깨에 메고 가서 진심으로 얼싸안고 몸을 씻기며 옷을 입힌 다음 장례를 치렀기에, 그들도 얼마 안가서 똑같은 시중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이때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 또 언제나 먼저 간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꺼이 나섰기 때문이었다."

 

내 안의 아이언맨이 그만 희생하자고 말을 걸거든, 예수님의 삶을 다시 묵상하라. 너의 행복이 최고라고 말하는 문화의 목소리를 듣거든, 그분의 희생을 생각하라. 혼자 영웅 행세 하지 말라고 꾸중하거든, 나의 죄를 위해 홀로 가신 그분의 위대함을 생각하라. 왜 희생하는가? 왜 이웃을 챙기는가? 돈이 많아서? 여유가 있어서? 사람은 근거 없이 희생할 수 없다. 우리는 희생할 근거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그 근거이다. 가난해질수록, 삶의 여유가 없을 수록,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한다. 내 삶이 어려워서 나만 챙기겠다는 세상의 생각을 버리라. 그분의 길을 따르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빚진 자이다.

 

[1-3] 요즘 나, 주변, 국가의 희생에 대한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남을 위해 일하거나, 참아서 손해보고, 고생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4-5] 기독교인은 왜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의지력이 좋아서입니까? 기독교인의 희생은 구원의 조건입니까, 구원의 결과입니까? 당신은 구원받았음을 확신합니까? 확신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6] 내가 주변에서 나의 이기심과, 세계관 자체를 바꿔서 생각해야 할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