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2

수컷칼럼19 “하나님이 남자를 만나시는 곳”(12. 9. 2014)

서창희 2014. 12. 8. 21:41

하나님이 남자를 만나시는 곳
(12. 9. 2014)

 

남자는 어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남자를 신앙의 고민 속에서 만나신다. 하나님은 남자에게 치열한 신앙의 고민을 던지신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고민하길 원하신다. 그리고 그 고민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남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고민을 품어야 한다. 남자 내면에 고민이 있는가? 분명히 그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고민은 남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이다.

 

가슴에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을 품은 남자가 있었다. 에디오피아 여왕의 재정 관리 내시였다. 예루살렘에 예배 드리러 갔다가 귀국하면서 성경을 읽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겐 믿음이 없었다. 성경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성경을 궁금해 했다. 알고 싶어 했다.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사도행전 8:28) 너무 어려웠다. 하나님은 그 남자를 놓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내시에게 빌립이라는 사람을 보내신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8:29) 빌립은 그를 만나 성경구절을 설명해준다. 내시는 복음을 이해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고, 이해 안되고, 고민하던 남자 내시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가슴에 고민을 품은 남자를 절대 놓지 않으신다.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고민들이 있다. 난 늘 이런 의심이 있었다. 기독교는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둔다고들 한다. 문제는 그 성경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고민 아닌가? 하나님은 고민을 품은 나에게 책으로 찾아오셨다. 복음서의 기록시기는 예수의 부활 당시 사람들이 모두 살아있었을 때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마가복음”이 꾸며낸 것이라면, 그 때 살아있던 사람들이 뭐라고 했겠는가? “나 그 현장에 있었는데? 당신 그거 잘못 쓴 거야라고 반박했을 것이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꾸며냈다면 그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실제가 아니라면 복음서는 결코 퍼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신의 친구가 죽었다. 그리고 절대 부활한 적이 없는데, 어떤 사람이 그 친구가 부활한 것이 확실하다고 소리치고 다닌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는가? “미쳤냐?” 절대 가짜 이야기는 퍼질 수 없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 이야기는 조금도 퍼질 수 없었다. 동시대 사람들이 모두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민을 푸는 순간, 하나님이 더 깊이 다가왔다.

 

한 가지 고민을 더 살펴보자. “예수님은 왜 노예 제도에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이런 질문들이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에베소서 6:5) 이런 말씀은 예수님이 노예제도를 강제로 묵인하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다. 예수님이 계시던 1세기 로마제국에서의 노예란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인신매매가 아니었다. 그 때 노예는 사회와 격리되지도 않았고, 임금을 모아 자유를 살 수도 있었고, 평생 노예로 지낸 사람도 없었다. 훨씬 많은 자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예수님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진짜로 문제가 되는 노예제도는 식민지 시대에 생겼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 때 들고 일어나서 노예 제도롤 폐지시켜버린 것이다. 몇 가지 고민을 풀고 나니, 신앙에 급격한 성장이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신앙의 고민이 있는가? “그냥 못 믿겠어라고 내팽개쳐두지 말라. 고민을 가슴에 품으라.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내가 품은 이 고민을 풀어 주옵소서하나님은 그 남자를 결코 놓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고민하는 그 남자의 답을 풀어주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이사야 1:18) 남자의 냉철한 이성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 이성의 상쾌함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남자 가슴속에 있는 고민을 좋아하신다. 고민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오라. 그리고 질문하라. 그것이 남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