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있는지 물어보라"(7. 3. 2016)
"버릴 수 있는지 물어보라"
(7. 3. 2016)
분명한 하나님의 뜻도 있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선택에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두 선택 모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부분이 있다. 두 선택 모두 하나님이 싫어하실 부분이 있다. 삶이 명확히 나뉘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택지들 하나하나씩을 보면서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아까운 부분이 있다. 놓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왜 놓칠 수 없는가? 왜 포기할 수 없는가? 그것이 회사, 물건, 사랑, 커리어일 수 있다. 왜 못 버리겠는가? 버릴 수 없는 이유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이유라면, 그것이 나의 우상일 가능성이 크다. 너무 아깝고, 너무 사랑하지만, 그만큼 나의 가짜 하나님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고 다가온 한 사람이 있었다. 부자 청년이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가복음 10:17) 자신은 영생에 관심이 있고, 다른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말했다. 예수님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신다. 버려도 괜찮겠냐는 것이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10:21) "정말 다른 의도가 없다면, 넌 버릴 수 있을 테니 버리고 와라. 다시 갚아주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떠났다.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10:22)
"그것을 버리는 대가는 너무 큽니다!" 바로 그것이다. 버리는 대가보다 하나님이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직장, 지금까지 해온 관계, 지금까지 쌓아온 돈을 버리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나에겐 아직 작게 보이는 것이다.
그 직장, 그 사람, 그 물질, 그 커리어가 없어도 그분의 인도하심, 그분의 보호하심을 느끼는가? 그것이 훨씬 나에게 큰 주제인가?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면, 아직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대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안전함이 하나님께 있다.
많은 말 하지 말고, 버릴 수 있겠는지 물어보라. 못 버리는 이유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건 모두 나의 우상이다. 모두 버리고 하나님만 붙들라. 필요한 모든 것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1-2] 내가 가진 것을 잃어서 심하게 상심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것을 잃었을 때 어떤 감정(두려움, 분노, 불안)을 느꼈습니까?
[3-6]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 왜 나에게 크게 느껴집니까? 하나님이 나를 안전하게 하신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