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정책 속의 하나님"(5. 1. 2016)
"나쁜 정책 속의 하나님"
(5. 1. 2016)
현대 직장인들이 가장 억울할 때가 언제인가? "윗선의 지시"를 억울하게 따라야 할 때이다. 남자 신입사원들이 송년회 준비를 맡았다.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 "좀 재미있는 것을 해보라" 결국 그 사원들은 걸그룹으로 변신했다. 환호성이 터졌다. 윗선은 그 남자 걸그룹들을 등산을 데려가서 앵콜을 외쳤다. 산 정상에서 그들은 걸그룹 춤을 추었다. 윗선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성경에 윗선의 무서움이 나온다.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왕은 유대인을 지배했다. 신하였던 하만은 유대인들에게 "왕의 명령이니 나에게 절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의미가 있었다. 한 유대인이 모르드개가 이에 저항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 일이 꼬인 것이다. 하만은 눈엣가시 같은 모르드개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신하는 왕에게 그를 고자질한다. 그러자 뜻밖의 나쁜 정책이 쉽게 결정 된다.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 하만에게 주며 이르되 ...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에스더3:10-11) 네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러자 하만은 일을 키운다. 그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다 죽이기로" 한 것이다.(3:13)
언제나 결정하는 윗선은 편하다. 그러나 실무진과 그 영향 받는 사람들은 어지럽다. 그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3:15) 한 사람의 복수심에 결정된 나쁜 정책이 유대 민족 전체를 말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어떻게 이용하시는가? 어느 날 그 왕이 잠이 오지 않는다.(6:1) 왕조실록을 읽다가 그 유대인이 왕의 암살을 막은 공로가 있음을 알게 된다.(6:2) 그 유대인에게 포상을 하려고 하다가, 유대인 멸절 음모를 꾸민 신하가 하만이었음을 알게 된다. 유대인이 죽어야 했던 그 날은, 오히려 적들이 죽는 날로 바뀐다.(9:5) 하나님은 윗선의 나쁜 정책을 잠시 허용하셨다. 그 나쁜 정책으로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끔 나쁜 사람들의 악을 허용하신다. 그러나 그 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만 사용된다. 아무리 윗선이 세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예수를 없애고자 했던 나쁜 의도들은, 인류 전체의 악이 없어지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승리를 가져왔다. 그 승리가 이미 나에게 있다. 이제 내 삶 속의 작은 나쁜 정책들도, 하나님의 승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에 사용될 것임을 믿는다. 그래서 나쁜 정책 속에서도 나름 견뎌낸다.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성실히 일 할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윗선의 실수로 회사가 어려워지는가? 윗선의 부조리로 내가 피해를 보는가? 함부로 분노하고 절망하지 말라. 잠잠히 뜻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하라. 부조리 속의 성실과, 부조리 속의 인내와, 부조리 속의 소망은 충분히 가치 있다. 당신의 그 견딤을 통해 그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
[1] 회사나 정부, 윗선의 정책과 결정들이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 어려움과 억울함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3] 에스더 3장 8-1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쉬웠습니까? 그리고 그 영향력은 얼마나 컸습니까? 거대한 세력 앞에 나의 초라함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4-6] 하나님은 선한 일만 허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쁜 일도 잠시 허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에스더에서 그 나쁜 정책은 어떻게 역전되었습니까? 삶에서 역전의 은혜를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좀 더 견디며 바른 태도를 가져야 할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