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이 무기가 된다"(9. 11. 2016)
"걸어온 길이 무기가 된다"
(9. 11. 2016)
하나님은 내 삶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걸어온 길을 무기로 삼으신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문장을 다시 떠올려보라. "자녀의 영원한 선에 기여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그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은, 그대로 걸어만 가도 무기가 되는 삶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어떤 책에 대하여 그 사람을 인정하는 기준이 있다. 간단하다. "읽었냐, 안 읽었냐"이다. 안 읽어본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앞 표지부터 뒤 표지까지 가면 일단 인정 받는다. 왜? 그 사이에 많은 졸림, 이해 안 됨, 답답함의 길을 걸어갔음을 알기 때문이다. 교수란 누구인가?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이다. 선배란 누구인가? 인생길을 먼저 간 사람이다. 다들 걸어온 길을 무기 삼아 싸우고 있다.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직접 걸어간 길만을 인정한다.
야곱이 이집트의 왕을 만났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세기 47:9) 왕 앞에 이민족 할아버지가 말한다. 할아버지가 무슨 권위가 있겠는가? 그런데 바로는 야곱의 권위를 인정한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창세기 47:10) 사람은 자기가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축복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바로는 아들 요셉만 인정한 것이 아니다. 바로는 "요셉을 잃은 인생의 슬픔을 견디며 끝까지 살아온 야곱을 인정했다." 걸어온 길이 무기가 된다. 걸어온 길이 권위가 된다.
다만, 하나님은 목적에 맞는 무기를 주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목적과 다르며, 하나님의 수단은 세상이 원하는 수단과 다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그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이 말하는 무기를 갖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생각이 없는 한, 내 인생의 대부분은 불행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걸어온 길을 유심히 살피라. 그것이 실패였는지, 인내였는지, 성공이었는지는 상관 없다. 그리고 그 무기가 통할만한 장소로 가라. 그곳이 나의 부르심이다. 내가 걸었던 길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라. 그 길을 인정하는 곳에서 일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하라. 나를 통해 그분의 뜻이 드러날 것이다. 그곳에서는 나의 무기가 제격이다.
[1-2] 우리가 인정하는 사람들의 걸어온 길을 떠올려봅시다. 그 사람이 살아온 어떤 길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걸어온 길을 떠올려봅시다. 대부분 가보지 않은 길을 허세로, 가짜로 드러내려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린 어떤 사람들을 좋아합니까?
[3-4] 하나님은 삶을 살아가고 뜻을 이룰 분명한 수단을 주십니다. 그것에는 내가 겪는 슬픔과 고민들도 포함됩니다. 내게 주신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하려 하지 않고, 세상이 말하는 무기와 비교하는 영역은 어느 곳입니까?
[5] 우리는 제한적으로 쓰임 받습니다. 내가 지금 역할을 해야하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유명인이 오면 대체가 가능합니까? "큰 일, 멋있는 일, 큰 사람, 멋있는 사람"의 허상에 빠져 "나의 일, 나의 사람" 속의 하나님의 뜻을 놓치곤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