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 속에도 길이 있다”(5. 5. 2019.)
“허용 속에도 길이 있다”
(5. 5. 2019.)
사사기 14:1-4
사람마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선이 있다. 이 선만 넘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선을 넘긴다. 우리 가족이 이런 일까지는 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선을 넘어간다. 우리 나라가 여기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선을 넘어버린다. 이제는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선을 훌쩍 뛰어넘는 삶이 우리네 인생이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부정함을 참을 수 없어 한다. 부정한 사람을 다 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상황을 무조건 깨끗하게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즉각 처벌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면, 우리 삶의 처벌은 에덴동산에서 이루어졌어야 한다. 아담이 범죄한 즉시 처벌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용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하나님의 허용하심을 받아들이라. 삼손이 사사로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만 만나고 다닌다. 부모가 걱정한다. 그러나 사사기 저자는 그 상황을 하나님의 허용으로 규정한다.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사사기 14:4) 죄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삼손은 죽도록 고생한다. 그러나 악을 하나님의 일시적 허용으로 바라보는 여유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정, 사회, 학교, 내 자신이 이미 선을 넘어버렸다고 한숨 쉬고 있는가? 하나님의 허용을 받아 들이라. 소망을 가지고 내게 주신 일을 계속해나가라. 허용 속에 나를 부르시고, 악의 창궐함 속에 내 삶을 활용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극단적인 허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것을 허용하셨다. “그것 만큼은 안 돼”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것도 허용하면서 이룰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들까지 죽이면서 하셔야 할 큰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었다. 너무 큰 죄이고, 너무 큰 회복이기에, 큰 허용이 필요했던 것이다.
큰 허용 속에 내가 서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겠는가? 그렇다면 나의 가정과 사회, 내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실 때에도 소망을 붙들고 일어서야 한다. 다시 평안과 기쁨을 붙잡아야 한다. 허용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분명히 허용 속에 큰 일이 펼쳐질 것이다. 허용 속에도 길이 있다.
[1] 삶을 살아 갈수록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저건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을 추스리느라 힘들었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2-4] 사사기 14장 1-4절을 읽어봅시다. 삼손은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부모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하지만 성경 저자는 삼손이 선을 넘는 행동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5-6] 허용 속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에게 무엇을 허용하셨습니까? 허용을 통해 하셨던 큰 일은 무엇입니까? 내 삶에 하나님의 허용하심을 믿고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여 계속 전진해야 하는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