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필요금융 선언”(11. 30. 2014)

서창희 2014. 11. 29. 19:03

필요금융 선언
(11. 30. 2014)

 

돈을 많이 벌면 돈이 남을까? 연봉 2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승진한 청년을 만났다. 남는 돈은 없다. 화장품을 비싼 걸로 바꿨기 때문이다. 미샤와 랑콤은 다르다고 말한다. 연봉 3천만원에서 4천만원으로 이직한 청년을 만났다. 오히려 저축했던 돈이 사라졌다. 모았던 돈을 모두 모아 차를 샀기 때문이다. 아반떼와 BMW는 다르다며 좋아한다. 돈을 더 벌어도 우린 돈을 모을 수 없다. 소비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에 관해 분석한 탁월한 저자다. 그의 책 소비의 사회에서는 소비의 변화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처음에 모든 물질은 1)사용가치였다. 안경이 왜 필요한가? 보기 위해서. 펜이 왜 필요한가? 쓰기 위해서. 이것이 사용가치다. 그러나 세상에 필요한 물건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기 시작한다. 이 펜 하나랑, 저 안경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2)교환가치다. 그래서 돈은 교환의 상징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제 사용가치, 교환가치를 넘는 소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상품 자체에 메시지와 상징이 담기는 것이다. “까르띠에의 메시지가 있다. “강남 아파트의 메시지가 있다. 이제 사람들은 사용가치를 사지 않는다. 그 상품이 주는 메시지를 산다. 그것이 3)기호가치이다.

 

사람은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한다. 특별해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은 내면을 바꿀 능력이 없다. 그래서 겉을 바꾼다. 어떻게 겉을 바꾸는가? 나의 소비를 바꿔서 나를 바꾼다. 내 소비가 바뀌면 내 정체성이 바뀐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성경은 사람의 정체성을 명확히 선언한다. “자녀이면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로마서 8:17)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필요는 하나님께로부터 얻는다. 소비를 바꾼다고 정체성이 바뀌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기호가치로 오염된 세상에서 자유롭다. 랑콤 살 돈이 있어도 미샤로 만족한다. BMW 살 돈이 있어도 아반떼로 만족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성경은 사람에게 소비에서 정체성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소비에 대해 필요가치에 머무르라고 명령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디모데전서 6:7-8)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남는 것은 모두 나누어야 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누가복음 6:38) 성경은 다른 사람의 필요가치를 세우는 방향으로 우리의 소비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더 번다고 해서 소비가 늘어나면 당신은 아직 기호가치에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더 벌었는데 어려운 나의 주변에 베푸는 돈이 그대로라면 당신은 아직 필요가치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다. 명심하라. 당신의 소비로 당신을 판단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절대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이 남들의 소비로 남들을 판단하고 있다면 당신의 이미 소비의 노예다. 소비를 벗어나 필요금융을 선언하라. 필요한 것만 쓰고, 더 벌수록 주변을 풍성하게 하라. 그것이 기독교의 소비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