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좋은 소식부터 시작하라”(12. 25. 2019.)

서창희 2019. 12. 23. 23:18

“좋은 소식부터 시작하라”
(12. 25. 2019.)

누가복음 2:8-1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좋은 소식(good news)라고 한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누가복음 2:10) 성경은 나보고 예수님이 오신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해보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다고 그냥 말해버린다.

 

여기에 성탄절의 핵심이 있다. 성경은 우리 삶에 벌어지는 일들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의 사역을 판단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 예수님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라고 선언해버린다. 그 존재, 그 방법을 좋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삶에 좋은 소식이 지속된다. 그러나 그 존재, 그 방법을 거부하면, 그 어떤 것도 좋게 받아들일 수 없다.

 

성탄절을 맞아, 내 인생에 ‘좋음’의 주인이 되었던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 누가 가난이 나쁘다고 했나? 누가 고난이 나쁜 소식이라고 했나? 누가 내 상황을 평가했나? 내 눈에 좋고 나쁜 것을 다 정해놓으니, 삶에 온통 나쁜 소식만 들려오는 것 아닌가?

 

주님이 내 삶에 오셨다. 그것이 좋은 소식이다. 좋다고 인정하라. 거기서부터 좋은 소식이 진짜 시작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일이 좋은 일이고, 예수님이 내게 좋은 분임을 인정할 때부터, 그 분이 이끄시는 삶의 모든 과정에도 좋은 소식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 땅에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셨던 주님은, 나쁜 소식처럼 들리는 삶의 여정을 거치셨다. “…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요한복음 19:6)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는 흉흉한 소식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만이 좋은 분임을 신뢰하며 그 길을 걸으셨다. 그것이 좋은 길임을 알고 걸으신 십자가의 길이, 내게 좋은 길, 구원의 길이 된 것이다.

 

이제 나도 알 수 있다. 내가 삶의 좋음과 나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 십자가의 흉흉한 소식을 듣고도 하나님을 신뢰하신 그 분의 삶으로 인해 내 삶에 영생이 주어졌다면, 내 삶의 나머지 소식들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리라. 그것이 좋은 길이었음을, 나는 좋은 분과 함께 걷는 그 길의 끝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1] 누가복음 2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성경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평가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2-4] 예수님의 성육신이 좋은 소식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내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요즘 좋은 것, 나쁜 것으로 내 마음대로 판단하며 좌절과 교만, 집착에 빠지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할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봅시다.

 

[5-6] 예수님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들으셨던 나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 삶의 여정을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그 결과 내게 주어진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내 삶에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좋은 소식을 바탕으로, 삶의 주요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