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하고 면접보라”(12. 21. 2014)
“면도하고 면접보라”
(12. 21. 2014)
옛날에는 한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반경이 넓지 않았다. 집 주변 학교에 입학했고, 내가 사는 도시에 취직했고, 옆 집 막내딸과 결혼했다. 지금은 어떤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외국에 있으며, 회사는 출퇴근이 1시간이 넘고, 내 배우자의 고향은 나와 너무 다르다. 이제 내 학교 동료, 내 회사 선후임들은 나에 대해서 이력서로만, 페북으로만 안다. 단지 지인일 뿐이다. 관계는 부분적이며 파편적이다. 현대 사회는 “옆집시대”가 아니라 “지인시대”가 되었다.
지인시대의 특징은 무엇인가? 거절과 배척이 쉽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옆집시대의 동네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면 모두가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예수님 연기를 하는 저 학생은 가난한 옆집 아줌마 아들이다. 마귀 역할을 하는 저 청년은 앞집 총각이다. 그 사람의 삶과 인격 전체를 안다. 그래서 대사를 틀려도 웃기고, 실수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그러나 지인시대는 어떤가? 교회를 가도 서로가 모르는 사이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 역할을 한다. 연기를 너무 못하고 대사를 틀린다. 아무 감동도 재미도 느낄 수 없다. 실수하면 화가 나고 불쾌하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인시대에는 첫인상, 첫 오디션, 첫 이미지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거기서 만족시키지 못하면 거절이 쉽다. 거부가 쉽다. 사회가 삭막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다. 면접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첫인상 밖에 없다. 당신의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수단이 의상, 손동작, 말투밖에 없다. 난 원래 착한 사람이라고, 난 원래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당신을 충분히 알아갈 시간이 없다. 이런 시대에서 미련하게 “마음이 중요한 거야”, “난 괜찮은 사람이야, 결국 날 알아 줄 거야”라고 넋 놓고 있다가는 모든 기회를 놓친다.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히브리 사람이었다. 바로 왕이 꿈을 잘 해석하는 사람을 찾다가 요셉을 부른다. 면접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요셉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한다. 면도를 한 것이다.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창세기 41:14) 왜 요셉은 뜬금없이 면도를 했는가? 히브리 사람은 수염을 기르고 살았다. 그런데 반면 이집트인들은 깨끗이 면도하고 살았다. 요셉은 히브리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다. 노예의 누더기 옷을 걸치고 가지도 않았다. 면도했다. 옷을 갈아입었다. 요셉은 그들의 스타일에 맞추어 주었다. 쓸데없는 인종차별, 문화장벽들을 제거했다. 요셉은 준비된 이미지 관리로 꿈을 해석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미지를 가꾸는 것을 지지하신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전도서 9:8) 무슨 말인가? 옷을 깨끗이 입고, 왁스도 좀 바르고 다니라는 뜻이다. 성경은 결코 패션을 정죄하지 않는다. 이는 지인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중요한 지침이다. 성경은 내면만 강조하지 않는다. 이미지로밖에 판단하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선 그 이미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꾸 면접에 떨어지고, 공동체에서 호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되는가? 그럴 땐 겸손하게 친구에게 물어보라. 내 옷의 스타일은 무엇이 문제인지, 나의 어떠한 제스처와 언행을 사람들이 싫어하는지 물어보라. 아주 기쁘고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겸손히 그 말을 받아들이라. 지금 나의 문제는 회개하지 않은 숨겨진 죄보다, 이미지를 무시하는 나의 태도일 수 있다. 하나님께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겸손하게 나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라. 새해에는 조금만 시간을 내어 이미지에 투자해보라. 요셉의 역전은 당신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