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4. 2. 2017.)

서창희 2017. 3. 31. 23:45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4. 2. 2017.)

마가복음 9:14-29

 

내 행복의 장애물이 많다. 특히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엄마가 병에 걸리시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시지만 않았어도, 누나가 방황만 하지 않았어도, 내 인생은 더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귀신들린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귀신들렸다고 했다.(21) 아들을 사랑한다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버지의 삶도 피폐해졌을 것이다. 이 아버지에게 아들이란, 사랑과 동시에 상처의 대상이다. 기대와 동시에 절망의 대상이다. 아들은 아버지 삶의 행복이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가서 고쳐달라고 한다. 못 고친다. 잠시 후 예수님이 나타나신다. 예수님은 아들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먼저 아버지에게 독특하게 물으신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9:21) 바로 이 질문이, 아버지의 마음을 파고든다.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신 것이었다. “오랜 시간, 아들만 힘들었던게 아닌 것 알고 있다. 진짜 힘들었던 사람은, 너였지? 오랜기간 찢겨진 너의 마음도 치유가 필요할 것 같구나.”

 

예수님은 아들 속의 귀신만 내쫓고 싶으신 것이 아니었다. 아들만 나으면 행복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지쳐가는 아버지를 함께 고치고 싶으셨다.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들이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만 고치러 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절망과 무력함도 함께 위로하길 원하셨다. 아버지도 예수님께 치유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이제 아들만 좀 고쳐달라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9:22) 아버지와 아들 모두 예수님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아들과 더 이상 선 긋지 않았다. 우리 모두 예수가 필요하다.

 

힘들게 가족을 섬기면서, 힘들게 홀로 일하면서, 저 사람만 정신 차리면 내 인생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되는가? 내 힘으로 해결하려다가 지친 그 마음을 예수께 가져가라. 예수님은 당신을 위로하실 수 있다. ? 예수님은 죄에 빠져 방황했던 긴 시간 늘 내 옆에서, 성부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그가 죽으심으로, 난 살아났다. 그의 능력이 내 안에 있다면, 내가 예수의 마음으로 그의 옆에 있을때, 나의 돌봄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이제 이렇게 기도하자.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우린 살 수 있다. 그분이 죽으셨기 때문이다.

 

 

[1-2] 내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의 관계들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아버지는 아들을 돌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3-4]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르게 질문하십니다.(21) 예수님은 아들을 고치는 것 뿐 아니라 아버지의 무엇을 터치하고 싶으신 것이었을까요?

 

[5] 섬기고, 돕고, 신경쓰다가 너무나 지친 내 삶의 관계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왜 나를 위로해 주실 수 있습니까? 긴 기다림, 긴 섬김이 열매 맺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왜 보장되어 있습니까? 내가 애쓰는 섬김들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지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