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요한이 관찰한 마지막 사랑”(2. 26. 2017.)

서창희 2017. 2. 22. 23:00

요한이 관찰한 마지막 사랑
(2. 26. 2017.)

 요한복음21:15-25

 

하나님은 나보다 내 친구를 더 사랑하시는 것 같다. 저 친구도 예수를 믿는다. 나도 예수를 믿는다. 나는 취업이 안 되고, 저 친구는 돈을 번다. 나는 결혼을 못 했고, 저 친구는 자녀를 키운다. 나는 가난한데, 저 친구는 헌금마저 많이 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고민이다. 하나님이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을 향한 질투가 시작된다.

 

베드로가 그랬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남이 끼어들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같이 따라다니자 베드로가 묻는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요한복음 21:21) 베드로는 늘 불안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게 맞을까? 요한이라는 친구가 더 성실한 것 같은데, 저 친구에게 복을 더 주시지 않을까? 늘 비교했다.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한복음 21:22) 예수님은 호통치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자신의 관계가 독점적임을 선언하신다. “비교하지 말아라!” 하지만 질투가 나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의심스럽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진짜 남들보다 사랑하셨을까? 베드로와 같이 다녔던 바로 그 요한이 쓴 요한복음 21장을 보라. 부활 후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시는 장면이다. 21장을 끝까지 읽어보라. 누구 이야기만 나오는가? 베드로 이야기만 나온다. 제자가 7명이나 있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만 말을 거시는가? 베드로에게만 말을 거신다. 요한이 관찰한 예수님의 마지막 사랑은 그랬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만 관심을 가지셨다. 명색이 요한복음이다. 그런데 베드로 이야기로 도배 되어있다. 그게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른 제자 6명은 얼마나 예수님께 말 걸고 싶었을까? 장면이 상상되는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15-17) 그 유명한 말씀의 주인공은 베드로였다. “네가 젊어서는... 늙어서는...”(18) 베드로의 미래 진로상담도 해주신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21) 베드로의 질투에도 대답하신다. 남은 제자 여섯은, 떼 쓰는 베드로 때문에 말도 걸어보지 못하고 조용히 옆에 서 있다. 베드로의 말은 그치질 않는다. “베드로, 이제 말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괘씸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놓지 않으신다. 부활 후 그 중요한 순간에도 예수님의 관심은 사랑의 확신이 없는 베드로에게 있었다.

 

베드로는 알았을까? 예수님은 생떼쓰는 자기만 보고 계셨다는 걸. 제자들 6명은 다 알고 있었다. 조용히 다 보고 있었다. 요한은 베드로를 놓지 않으신 예수의 마지막 사랑을 관찰한 것이다. 요한이 만난 예수님 사랑의 결론은, “예수님은 베드로 끝까지 놓지 않으시더라였다. 예수님이 요한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근심했던 베드로.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 베드로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보고 있다.

 

[1-3] 하나님이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무엇에 비교될 때입니까? 특히, 믿는 사람끼리 비교할 때 나의 실망감과 의심은 더 커집니다. 어떨 때입니까?

 

[4-5] 요한복음 212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제자는 모두 몇 명이었습니까? 7, 11, 15, 19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온통 누구에게 관심이 있었습니까?

 

[6]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질투, 심술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인 행세를 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그 사랑 앞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