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영광이 요구하는 영역”(6. 23. 2019.)

서창희 2019. 6. 11. 19:34

“영광이 요구하는 영역”
(6. 23. 2019.)

요한복음 5:41-44

 

영광이 무엇인가? ‘나의 존재를 높이는 외부의 것’이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높아진다.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자리가 귀한 자리이기에, 참석한 나도 귀한 사람이 된다. 영광을 만나면 나도 높아진다. 그래서 사람은 영광을 찾는 것이다.

 

모든 영광은 영역을 요구한다. 멋진 남녀의 소개팅의 영광은 하루 뿐이다. 그래서 하루 전에만 얼굴 팩을 하고, 준비를 잘 하면 된다. 하지만 결혼은 더 큰 영광이다. 그래서 더 많은 영역을 요구한다. 몸도, 마음도, 심지어 은행 계좌도 요구한다. 영광이 크니, 요구하는 영역도 커지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삶 전체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싶어진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삶의 모든 영역의 행동에 민감해진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영역이 ‘삶의 전부’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한복음 5:44)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 되시기에, 그 영광이 요구하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하나님이 내게 영광을 보여주실 거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그의 삶엔 영광이 없을 것이다. 영광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영광의 크기만큼 행동이 변화되게 되어있다. 영광은 행동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사람은 사로잡힌 영역만큼 행동이 바뀐다. 우리 정직하게 인정하자.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신의 행동이 변한다는 것은, 분명 지금 다른 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순종하셨다. “예수께서 그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요한복음 19:28)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사셨기에, 모든 일을 요구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나의 구원과 나의 영생은, 예수님이 영광이 요구하는 영역에 순종하셨기 때문이다. 그 영역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드리는 것이었다.

 

전부를 내어주셔서, 영생의 영광을 이미 맛보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원한다면, 영광이 요구하는 영역을 다시 생각하라. 사로잡힌 영역이 커지는 만큼, 누리는 영광도 커질 것이다.

 

[1-2] 영광의 크기가 클수록, 요구하는 영역도 커집니다. 평생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리고 그 영광이 내게 요구했던 영역은 무엇입니까?

 

[3-4] 요한복음 5장 44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우리의 행동은 사로잡힌 영광에 따라 바뀝니다. 내 삶의 행동은 요즘 무엇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5-6] 예수님은 아버지가 주시는 영광을 위해 어느 영역까지 내어드렸습니까? 내 삶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맛보기 위해 내어드려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