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인도하심이다”(3. 10. 2019.)
“아쉬움이 인도하심이다”
(3. 10. 2019.)
요한복음 4:39-42
좋은 행동은 의무에서 즐거움으로 바뀌어야 한다. 처음엔 운동이 싫었지만, 서서히 즐거움이 되어간다. 처음엔 의무감에 교회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제 믿음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즐겁다. 좋은 것은 의무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즐거움으로 바꾸어야 한다.
내가 즐거움으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게임이 벌써 끝나서 아쉽다. 모임이 벌써 끝나서 아쉽다. 벌써 다 먹어서 아쉽다. 아쉬우면,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한다.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관심을 갖지만, 이분이 곧 떠나실 것이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그래서 예수님을 멈춰 세운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요한복음 4:40) 유하다는 말은 머무르다(stay)는 말이다. 그 상태 그대로, 내 옆에 이대로 지속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일상에서 아쉬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출근에 쫓길 때, 업무에 시달릴 때, 피곤에 쩔어 있을때 내가 그토록 하찮게 여긴 예배 시간, QT 시간, 아침에 잠잠한 묵상 시간, 밤의 고요한 기도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세상에 나를 쉬게 만드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음도 깨닫는다. 그 아쉬움을 따라가라. 아쉬움이 바로 사모함의 증거이다.
하나님은 내가 잘못 추구하는 것을 질리게 하실 것이다. 반대로, 내가 추구했어야 했던 것을 아쉽게 만드실 것이다. 아쉬움 속에 다시 하나님을 붙들게 하실 것이다. 최근 의무적인 기도시간보다 5분만 더 기도했으면 바랄 때가 있었는가? 성경을 2장씩만 읽었으나, 조금 더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아쉬움을 좇아 충만함으로 나아가라.
하나님께 가면 무조건 아쉬움이 채워진다. 왜 그런가? 아쉬움이 채워지지 않는 경험을 내 대신 하신 분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쉬움을 토로하신다.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한복음 19:28)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었다. 이것이 죄인이 당해야 할 심판이었다. 내 대신 심판 당하신 그분이 있기에, 하나님을 아쉬워하고, 그를 사모하면, 언제나 내 삶은 충만하게 채워진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느껴야 한다. 아쉬움으로 살라. 하나님을 아쉬워하는 마음, 그것이 삶이 밝아지고 새로워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해지는 길이다.
[1-2]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의무에서 즐거움으로 변화된 경험이 있습니까? 아쉬움을 느끼면서 그것을 좋아하게 된 것들을 나누어봅시다.
[3-5] 요한복음 4:39-42를 읽어봅시다. 여인을 통해 예수님을 전해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표현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몰랐던 아쉬움이 생기고, 알았던 것이 지겨워지는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바쁜 생활 속에 경건생활의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6-7] 하나님은 아쉬움으로 장난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아쉬움은 무조건 채워짐이 보장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내 대신 경험하셨습니까? 내 삶이 하나님을 사모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내면적인 인도하심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