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디자인하라”(8. 10. 2014)
“선택을 디자인하라”
(8. 10. 2014)
사람의 선택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주어진 프레임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선택이 바뀔 수 있다. 맥도날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메뉴판에 콜라 사이즈가 스몰(small), 미디움(medium), 라지(large)로 적혀있었다. 사람들은 어떤 사이즈를 가장 많이 주문했을까? 미디움이다. 사람들은 보통 중간 것을 선택하려는 속성이 있어서 그렇다. 물론 손님들은 자신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맥도날드는 메뉴판을 바꿔버렸다. 스몰을 없애고, 미디움, 라지, 엑스라지만 띄웠다. 손님들은 어떤 사이즈를 가장 많이 선택했을까? 라지다. 라지가 가장 합리적 소비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그냥 라지가 중간에 있어서 그렇다. 메뉴판 하나만 바꿔서, 맥도날드는 콜라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대화란,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대화는 상대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통로다. 대화는 출구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대화는 좋은 대화이다. 그러나 나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화는 다 가짜다.
가슴이 뜨거운 크리스천 교사가 있었다. 자신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고등학생이 술에 많이 취해서 삶을 낭비하고 있었다. 답답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너 하나님 사랑해 안 사랑해?” “사랑해요.” “하나님이 술 좋아해 안 좋아해?” “안 좋아해요.” “그럼 마시면 돼 안돼?” “안돼요.” “근데 왜 마셨어? 앞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해. 알겠어?” 대화 속에는 너는 나쁜 놈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다. 그러나 대화의 선택지를 잘못 구성하니까, 술 마신 청소년은 죽일 놈이 되어버렸다. 그 청소년은 순식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만 하는 죄인이 되었다.
프레임을 바꾸면 대화의 선택이 바뀐다. “너 하나님 사랑하지?” “네 사랑해요.” “하지만 삶이 결심한대로 다 되니?” “잘 안돼요.” “하지만 하나님이 부족한 모습도 다 받아주시는 거 알지?” “네 알아요.” “그래 부족한 모습으로도 계속 하나님께 나가면 되는거다?” “네 알겠어요.” 똑같이 술에 취한 고등학생이었지만, 한 교사는 절망을, 다른 교사는 희망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것이 대화의 실력이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다.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한복음 20:25) 나 같으면 그 말에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부활을 안 믿는다고?” “네 못 믿겠어요.” “너 지금 내 모습 안보이니?” “보여요.” “그럼 내가 예수가 아니란 말이네?” “…” “야, 베드로야. 도마 이 자식이 하는 말 좀 봐라. 눈 앞에 날 보고도 부활을 못 믿겠다고 한다. 날 예수로 인정 안 한다는 뜻이네? 넌 제자 맞냐?” 짧은 대화 한 번에, 도마 너는 제자도 아니고, 베드로만도 못하고, 눈 앞에 사람을 두고도 무시하는 놈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예수님은 대화의 프레임을 다르게 구성하셨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 예수님은 도마가 예수님을 인정하는 선택을 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선택지를 추가하셨다. “내 몸을 만져보아라.” 선택지를 추가했기 때문에, 성경에 도마의 고백은 다르게 쓰여졌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
사람은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다. 사람은 남이 나에게 걸어주는 대화로 성장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택지로 성장한다. 예수님의 선택 디자인법을 배우라. 언제나 상대방에게 생명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주라. 상대방이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선택지를 디자인 해보라. 그것이 대화의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