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사랑은 고난을 품는다”(2. 5. 2017.)

서창희 2017. 2. 3. 17:58

사랑은 고난을 품는다
(2. 5. 2017.)

 

마가복음 10:17-22

엄마에게 대드는 자녀가 있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녀를 내치지 않는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로 인해 겪을 상처와 아픔, 삶의 어려움을 자녀와 함께 감당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고난을 품게 만든다.” 어리숙함이 뻔히 보이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그 친구를 밀쳐낸다. ? 그의 어리숙함 때문에 벌어지는 내 삶의 어려움을 감당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사랑은 고난을 밀쳐낸다.”

 

삶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도가 뻔히 보인다. 어리숙함과 연약함이 발견되면, 우리는 울타리를 친다. “를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으로 인한 고난을 감당하기 싫은 것이다.

 

자신의 훌륭한 행동으로 영생을 얻고자 했던 청년이 예수께 묻는다. “저 이 정도 했으면 천국 가죠?”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 청년의 의도를 다 아셨다. 나보고 잘 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다. 한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응이 흥미롭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마가복음 10:21)

 

예수님은 너의 공로로 천국 입구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냐?” 핀잔 주지 않으신다. 틀린 의도를 까발리지 않으시고, 스스로 돌아볼 말을 건네신다. “네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예수님은 그를 내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의 불순한 의도를 끝까지 품길 원하셨다. 떠난 것은 청년이지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그와 대화하길 원하셨.

 

고약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의도들이 훤히 보이는가? 당신은 지혜로운 자이다. 그러나 그 지혜로움 때문에 그들을 떠나면, 당신은 지혜는 있으나 사랑은 없는 자이다. 지혜는 의도를 보게 만든다. 그러나 사랑은 의도를 품게 만든다. 사랑이 있는 자만이 그들의 연약함을 고쳐줄 수 있다. 피하는 것은 예수님의 답이 아니다. 사랑은 그로 인한 고난을 품는 마음이다.

 

남의 의도가 훤히 보인다고 자랑하지 말고, 남의 어리숙함에 같이 뛰어들어 사랑으로 그를 변화시키라. 나의 어리숙함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내 마음 속으로 뛰어 들어서 같이 나와 사시겠다고 말씀하신 성령을 생각하라. 나의 의도를 이미 아셨을텐데, 도대체 왜 나로 인한 고난을 감당하길 원하셨던 것인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그 의도를 깨달아 알 때에만, 다른 사람들의 의도를 넉넉히 상대할 수 있다. 사랑은 고난을 품는다. 그 길이 예수의 길이다.

 

[1-2] 내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등)의 연약함 때문에 같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나를 제일 화나게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3-4] 마가복음 1017~22절을 읽어봅시다. 청년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습니까? 예수님은 그 의도를 아셨습니까?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5-6] 요즘 훤히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