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벼랑 끝에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10. 20. 2013)

서창희 2013. 11. 26. 11:19

“벼랑 끝에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
(10. 20. 2013)

엄마가 아들에게 컴퓨터 금지령을 내리고 출근했다. 아들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게임을 했다. 엄마는 퇴근 후 컴퓨터 모니터가 뜨거운 것을 보고 아들에게 말한다. “모니터가 뜨겁네? 왜 이러지?” 아들이 당황한다. 당황하는 아들 표정을 본 엄마는 일부러 이렇게 말을 한다. “아, 모니터만 켜 놔서 그렇구나!” 엄마는 벼랑 끝에 서있는 아들에게 일부러 피할 길을 내 주었다. 이미 엄마는 아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손석희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박근혜 후보는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손석희는 이렇게 묻는다.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시겠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유권자들의 판단은 과거를 보고 하는 판단일 텐데요?” 박근혜 후보는 당황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손석희는 대답한다. “그렇진 않습니다.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손석희는 “당신은 지금 무작정 앞으로만 잘하겠다고 이야기만 하고 있잖아요!”라고 끝장내지 않았다. 상대가 논리적인 모순을 보이자 싸움을 피하고 돌아섰다. 이미 청취자는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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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호언장담 한 사나이였다. 주변의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신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다. 예수님은 대화주제를 “배신의 최후”, “제자의 자격”으로 정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대화주제는 “사랑의 회복”이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한복음 21:15) 예수님은 벼랑 끝에 서있던 베드로를 밀치지 않으셨다. 베드로 스스로가 더 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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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학자 달라스 윌라드는 겸손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를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사랑을 배우려거든 몰아세우기를 중단하라. 겸손을 배우려거든 벼랑 끝에서 돌아서라. 끝장내려고 하지 말라. 발가벗기지 말라. 벼랑 끝에서 밀지 말고 다른 말을 하라. 희망을 주라. 기회를 주라. 새 옷을 입혀주라. 그것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