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과 혼란 속으로 들어가라“(6. 15. 2014)
“바쁨과 혼란 속으로 들어가라“
(6. 15. 2014)
삶에는 혼란, 불완전함, 부족함, 바쁨이 있다. 바빠서 사역하기 어렵고, 삶이 혼란해서 순종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쁨과 혼란 속에서 일하기를 즐기신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밀한 승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제자 중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이 죽으신 당일, 요셉은 예수님을 장사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율법 때문에 안식일 전날 저녁부터, 안식일 저녁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안식일 전날 돌아가셨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누가복음 23:54)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예수님을 장사 지낼 수 없다. 율법 위반이다. 너무 바쁘다. 혼란스럽다. 그러나 요셉은 바쁨 속에 일을 이루어낸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마가복음 15:46)
예수님을 사랑한 또 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야 했다. 그러나 무덤 입구의 돌이 문제였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마가복음 16:3) 돌을 어떻게 옮기고 들어가야 할지 몰랐다.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보니 무덤의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마가복음 16:4) 문제가 많았다. 염려가 많았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겼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소식을 접한 첫 번째 사람이 된다.
지난주 교회에서 한 형제가 시험기간이라 바빠서 집에 가려고 했다. 주일성수가 무엇인지,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친구였다. 내가 말했다. “지금 바쁘지? 그 마음 잘 알아. 하지만 다음 시험기간에는 덜 바빠질 것이라 생각해?” 그 형제는 무슨 말인지 간파했다. 삶은 더 바빠지고, 더 혼란해질 것을 이해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바쁨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혼란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묵묵히 하나님 앞에 머물기로 했다. 이 형제는 부활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 시험이라 바쁠 것이다. 취업 준비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것이다. 다 이해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인생에 지금보다 덜 바쁘고 덜 혼란스러운 날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The best is yet to come.”(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또 한 문장도 함께 기억해두라. “The worst is yet to come.” 최악의 날도 아직 오지 않았다. 약간의 바쁨과 혼란을 이유로 예배와 순종의 자리를 떠나지 말라. 지금 떠나면, 당신이 이후에 예수님을 다시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유와 평안의 날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고 바쁨과 혼란 속으로 들어가라.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겠지만 계속 혼란 속 순종의 길로 걸어가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그 곳에서 맛 볼 것이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부활이 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