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의 죄책감”(6. 7. 2020.)
“무력의 죄책감”
(6. 7. 2020.)
고린도후서 4:7
나쁜 일을 했을 때만 죄책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능력의 부족 속에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직장 동기는 성과를 잘 내서 상여금도 받는다. 부모님께도 기쁨이 된다. 나는 몇 년째 취업 준비, 자격증 준비로 벅차다. 옆집 부모님은 시간과 돈이 많은 사람이다. 난 그렇지 못한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무력의 죄책감이다.
신앙은 무력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은 능력의 근원을 이렇게 규정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이 추상적인 표현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까지 무력은 내 삶의 미래와 행복을 가로막는 요소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무력은 더 이상 삶을 망치는 위협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무력함은, “내 힘 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하는 과정이다.
세상은 돈이 없어서 자녀가 잘 안 된다고 하는데, 무력한 가정 속에서 믿음의 자녀가 나온다. 세상은 실력이 없어서 직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는데, 무력한 재능 속에서 삶의 길이 열린다. 믿는 사람에게 주어진 무력은 결코 저주가 아니다. 무력은 의도적인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도적인 무력을 허락하셨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무력 속에, 죽음에서 건지시는 부활의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무력을 통해 구원을 얻은 자라면 다짐하라. 나의 삶과 주변의 무력함에 대해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대했던 모든 태도를 당장 버리기로 다짐하라. 무력함 속에 하나님은 내 삶에 필요한 모든 소중한 것을 지키실 것이다.
무력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상대의 무력을 정죄하는 태도에서도 벗어나라.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으로 행복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력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더 이상 무력은 내 삶의 위협이 아니다. 서로의 무력함을 용납하면서, 하나님을 기대하라.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1] 내 자신의 무능, 무력 때문에 죄책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능력 때문에 부러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까?
[2-4] 고린도후서 4장 7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능력의 근원을 어떻게 규정합니까? 신앙인들은 사람의 능력(혹은 무능)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뀝니까?
[5-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경험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무력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내 자신과 주변의 무능과 무력에 대한 나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